정읍사 (井邑詞)
-『악학궤범』「정읍사」
하 노피곰 도샤 / 머리곰 비취오시라
져재 녀러신고요 / 즌 드욜셰라
어느다 노코시라 / 내 가논 졈그셰라
▶ 부부 간의 사랑과 도리를 읊은 시가(발췌)/ 지아비를 걱정하는 달빛 같은 사랑 _ 정재민
『고려사』에 따르면, 「정읍사」는 어떤 여인이 행상을 나간 지아비가 밤길을 다니다가 해로운 일을 당할까 두려워하여 수렁물의 더러움에 기탁하여 지었다고 한다. 즉 장사를 나갔다가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걱정하는 아내의 애타는 마음이 담긴 노래라는 것이다.
그러나 가사의 맥락을 재삼 음미해 보면, 남편에 대한 아내의 다채로운 속내를 찾아볼 수 있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남편에 대한 걱정이다. 행상이란 이곳저곳으로 정처 없이 떠도는 숙명을 타고난 직업이다. 그렇다 보니 항상 위험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도적이나 산짐승 같은 외부적 위험도 있고, 질병이나 환각 같은 내부적 위험도 있다. 집에 남아있는 아내는 이러한 내적, 외적 위험을 우려하며 가슴을 졸인다.
그러나 걱정과 우려만 있는 것은 아니다. 아내는 남편이 무사하기를 바라고, 하루빨리 돌아오기를 소망한다. 행여나 진 곳을 디딜까 염려하는 부분에서는 아내의 은근하고 따뜻한 애정이 느껴진다. 그 뿐만 아니라, 밤길도 마다하지 않고 가족의 생계를 위해 고생하는 남편에 대한 연민도 우러난다.
이와 같이 「정읍사」에는 남편에 대한 잔잔한 걱정과 근심, 은근한 애정과 연민, 절절한 그리움과 기다림이 교직되어 있다. 그것은 섬섬옥수로 짜낸 고운 비단과 같다. 그 사랑은 결코 화려하지도 않고 애간장 녹을 절도로 애절하지도 않다. 또겁지도 않고 차갑지도 않다. 그저 맑은 달빛같이 잔잔하고 깊다.
※ 블로그 후기/ 백제 가요인 이 노래를 어떤 면에서 고려 속요라고 할 수 있는가?
①주제면 ②내용면 ③ 제재면 V④형식면
[김봉군 · 한연수 공저 『하이라이트 문학 자습서』(102~103쪽)/ 1994.1.15.(株)志學社 발행]
※※ 휴대폰에서 열람 시 훈민정음체 부분, 왜곡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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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청춘 』2016-가을호 <고전산책>에서
* 정재민/ 1964년 경기 양평 출생, 저서 『한국운명설화의 연구』『사관생도의 글쓰기』외. 현재 육군사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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