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시가

장석주_물의 노래(발췌)/ 고대가요,「공무도하가」

검지 정숙자 2016. 9. 20. 13:07

 

 

 시와표현2016-9월호「권두시론」(발췌)

 

 

    물의 노래(발췌)

 

     장석주

 

 

  물은 노자나 공자 같은 동양 철학자들이 자주 쓰는 '뿌리 은유'일 뿐만 아니라 우리 서정시의 원류이기도 하다. 고대가요「공무도하가」는 최초의 서정시다. 이름을 알 수 없는 백수광부(白首狂夫)의 아내의 노래로 알려진 이 고대가요의 원가(原歌)는 전해지지 않는다. 다만 한문으로 적은 「공후인」이 진나라 최표(崔豹)의 『고금주(古今注)』에 설화와 함께 채록되어 있다.

 

 

  임이여 물을 건너지 마오. 公無渡河

  임은 결국 물을 건너시네. 公竟渡河

  물에 빠져 죽었으니. 墮河而死

  장차 임을 어찌할꼬. 將奈公河

   -고대가요, 「공무도하가」

 

 

  남편의 죽음을 애달파하는 아내의 이 노래가 널리 퍼진 배경설화는 다음과 같다. '공후인'을 지은 것은 조선의 진졸(津卒) 곽리자고의 아내 여옥이다. 자고가 새벽에 집을 나와 배를 저어 가는데, 미친 사람이 흰 머리를 풀어헤치고 물을 건너고 있었다. 아내가 뒤쫓아 와서 막았으나, 그는 기어코 물에 빠져 사라진다. 아내가 공후를 타며 '공무도하'의 노래를 부르니, 그 곡조가 구슬퍼서 폐부를 찌르는 듯했다. 여자는 남편 뒤를 따라 제 몸을 물에 던졌다. 자고가 돌아와서 아내에게 새벽 강가에서 보고 들은 바를 전하고 노래를 들려주니, 여옥이 슬퍼했다. 여옥이 공후로 그 소리를 본받아 연주하고, 이웃 여자 여용에게 전하니 일컬어 '공후인'이라 한다.

 

  한 사람이 죽고 난 뒤 남은 또 한 사람이 죽음으로써 비극적 사태의 규모가 더 커지지만 강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무심히 흐른다. 이 모든 사태를 목격한 곽리자고는 두 죽음을 품고 시치미를 떼는 강의 무정함에 몸서리를 쳤을지도 모른다. 집에 돌아와 제가 보고 들은 것을 아내에게 전하며 다시 한 번 이 비극적 사태가 미친 마음의 충격을 진정시키려 했을지도  모른다. '임'은 건너지 말라는 강을 왜 기어코 건넜을까. 그건 '임'이 술에 만취된 상태이거나 미쳤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어쩌면 그의 가슴에 맺힌 한이 너무 깊어 살아서는 감당할 수 없었기에 능동적으로 죽음을 선택한 것인지도 모른다. 어쨌든  '임'은 미쳐서 건너서는 안 되는 강을 건너다가 죽고 만다. 이 비극적 사태는 뒤집을 수 없다. 죽은 '임'은 다시 살아 돌아오지 않을 테니까. '임'의 강 건너기를 한사코 말렸던 남은 자[아내]의 슬픔은 클 것이다. 남은 자는 그 슬픔을 이기지 못해 '임'의 뒤를 따라 강에 제 몸을 던진다. 죽음을 마다하지 않고 강을 건너는 '임'과 그 죽음을 막아보고자 소리쳐 만류하던 그의 아내는 강물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이 비극은 '기어코'의 비극이다. 두 사람의 죽음은 '기어코' 벌어진 사태인 것이다. 이 '기어코'야말로 시가 발원하는 지점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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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와표현 』2016-9월호 <권두시론>에서                      

  * 장석주/ 1975년 『월간문학』으로 등단, 1979년 《조선일보》신춘문예로 등단, 시집『몽해항로』외, 평론집『시적 순간』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