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부강사독서 寄夫江舍讀書
허난설헌(許蘭雪軒, 1563-1589, 26세)
제비는 비스듬한 처마에 쌍쌍이 날아들고 燕掠斜簷兩兩飛
떨어지는 꽃잎은 어지러이 비단옷 스치네, 落花撩亂拍羅衣
깊은 규방에서 멀리 내다보며 봄 뜻을 잃었는데 洞房極目傷春意
강남에 풀 푸르러도 임은 돌아오지 않네. 草綠江南人未歸
▶ 여인의 삶과 그 속내를 읊은 시가들/- 여성의 한시에 그려진 '그녀'의 속마음(발췌)_정재민/ 육군사관학교 교수
제목은 '강가 초당에서 독서하는 남편에게 부치며'라는 뜻이다. 난설헌은 15살 때 혼인했다. 신랑 김성립(金誠立, 1562-1593, 31세)은 17살이었다. 난설헌의 시집살이는 혹독했다. 시어머니는 며느리의 재능을 인정하지 않았다. 심지어 아들이 과거에 낙방한 것도 며느리 탓이라고 구박했다. 게다가 놀기를 좋아했던 김성립은 과거공부를 핑계로 강가에 집을 짓고 따로 살았다. 사정이 이러하니 난설헌은 독수공방하기 일쑤였다./ 이렇게 원만치 않았던 결혼생활의 비애가 시 속에 담겨있다. 제비가 짝지어 날아들고 꽃잎이 분분히 흩날리는 봄밤! 난설헌은 되레 '춘의春意'를 잃어버렸다고 독백한다. 강가에 풀이 푸르렀는데도 임은 돌아오지 않기 때문이다. 외롭고 고달픈 삶에 지친 여인의 원망이 스멀스멀 풍기는 대목이다./ 우연한 일치였을까. 김성립은 난설헌이 죽던 그해에 과거에 급제했다. 몇 년만 더 빨리 급제했더라면, 부부간의 관계가 호전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난설헌 내외의 불화와 갈등은 제법 깊었던 것 같다. 오죽하면 그녀는 조선에 태어난 일, 여자로 태어난 일, 김성립과 혼인한 일을 평생의 세 가지 한이라고 언급했다는 일화도 있다. 그녀가 남긴 시구처럼, "부용꽃 스물일곱 송이 붉게 떨어지듯" 난설헌은 젊은 나이에 훌쩍 세상을 떠났다. 아마도 어렸을 적부터 동경했던 신선의 세계로 들어갔으리라. 땅바닥에 뚝뚝 떨어진 동백꽃같이, 지금 우리 앞에 남아있는 그녀의 시는 쓸쓸하기만 하다.(p.84-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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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청춘』2019-봄호 <고전산책 13> 에서
* 정재민/ 1964년 경기 양평 출생, 저서『한국운명설화의 연구』『사관생도의 글쓰기』등, 현재 육군사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겸 교수학습개발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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