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잉곡선
정숙자
실족 없다
온몸 뒤져도 굴절도 없다
두고 온 수족으로 거뜬히 비탈을 넘고 바람을 추월한다
절벽, 틈서리, 풀숲… 어디라도 스민다
돌출 없다
비늘 한 잎 덧대지 않았다
신은 저이를 만드는 데 유독 공들였을까?
맨 마지막에 구상했을까?
그런 만큼 ‘완벽’을 추구했을까?
엑스레이 찍는다면 이를 데 없이 촘촘한,
무수한,
질서정연한,
뼈라고 부르기엔 너무나도 미세한,
가시들을 보여주겠지
바로 거기서 과잉곡선의 슬픔이 밝혀지겠지
(이브는 굳이 매혹되었을 것이다. 아담 역시 매개자가 없었다 해도,
저이가 직접 꼬였다 해도 거부할 수 없는, 그 흠잡을 데 없는 미끈함
에 녹아들었을 것이다.)
신이 틔운 피가 어쩌다 독이 됐을까?
저이가 아니었다면 지금도 이곳은 낙원이었을까?
매듭 없는 물결들이, 뒤엉킨 머리들이
허공마저 물어뜯고 옥죄어간다
-전문,『시와표현』2016. 2월호
▶「과잉곡선」구상에서 탈고까지 30여 년
뱀은 왜 눈에 띄는 그 즉시 흠칫 온몸에 소름이 돋을까? 이브, 사과, 그리고 에덴동산에서의 추방 등, 거기 얽힌 배경을 떠올릴 겨를도 없이 놀라게 되는 까닭은 도대체 무엇일까? 실인즉 내가 뱀으로부터 원수 삼을 만한 피해를 입은 일도 없지 않은가? 그렇다면 나도 집단무의식에 가담한 꼴이 아닐까? 이성(理性)을 훈련하면 그 부정적/초자연적 ‘놀람’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그러니까 내 나이 서른 무렵, 뱀에 대한 감정을 이성으로 조절할 수 있는지 시험해 보리라 마음먹고 실행에 들어갔다. 뱀은 내 고향 김제 너른 들에서 흔히 봐왔지만 나비나 잠자리 메뚜기들과는 사뭇 다른 친구다. 내가 감정실험을 계획한 동기도 실증 불가능한 그 친구의 죄악이 ‘혹 누명(陋名)은 아닐까’ 그런저런 생각 끝에 불쌍함과 미안함, 속죄의 심정도 한몫했기 때문이었다.
당시, 나는 군인가족으로서 전방의 오지를 전전했으므로 배경은 따로 마련할 필요가 없었다. 식은땀과 함께 길섶에서 수시로 전송해야만 했던 그 친구! 내 감정실험의 최종 목표는 ‘놀라지 않기’였다. 뱀은 기는 게 아니라 흐른다고 하는 편이 더 잘 어울린다. 어찌 걷지도 기지도 않고 흐르는 육체가 있을 수 있단 말인가? 물이나 바람, 구름, 음악도 아니면서 흐를 수가 있다니!
우리 고향 사투리 중에 ‘뜽키다’라는 말이 있다. 그 뜻은 당근이나 무 파뿌리 등이 오롯이 뽑혀 나오지 못하고 중간에서 끊어져 일부는 땅 속에 그냥 머물러 있는 현상을 일컬음이다. 그렇게 되면 아무리 잘 가꾼 뿌리라 하더라도 영 재미없는 결과가 되고 만다. 내가 ‘뱀’에 관한 영감(靈感)을 30여 년이나 선뜻 담아내지 못한 속내는 그야말로 섣불리 ‘뜽킬까 봐’ 미뤄온 탓이었다.
‘과잉곡선’은 또 하나 필자의 신조어에 속한다. 뱀의 행보는 과도히 곡선이 넘친다. 소박한 데라곤 없는 세련미와 인간미를 견주어봄직하다. 감정실험을 할 그 무렵에 쓴 단상으로는 ‘악어에게(시집『이 화려한 침묵』1993.명문당)’ 와 ‘아기 도마뱀(같은 책)’이 있다. 정작 창작일은 84년, 86년으로 되어 있으니 시인의 시간이 어찌 신선놀음의 도끼자루가 아니라고 할 수 있겠는가.
* 에필로그: 그때 그 감정실험은 일시적으로 효과적이었으나 오래잖아 실패를 확인하고 말았음
(※ 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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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에티카』2016-하반기호 <시에티카 시로 여는 에세이>에서
* 정숙자/ 전북 김제 출생, 1988년『문학정신』으로 등단, 시집『열매보다 강한 잎』『뿌리 깊은 달』외. 산문집『밝은음자리표』『행복음자리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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