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에세이>
'동주'를 만나다
김요아킴
아마 윤동주 시인과의 첫 만남은 초등학교 시절 우연히 읽었던 「오줌싸개 지도」라는 시를 통해서일 것이다. 지난밤 동생이 요에다 싼 오줌을 "꿈에 가본 엄마 계신/ 별나라 지돈가?/ 돈 벌러 간 아빠 계신/ 만주행 지돈가?"로 표현한 구절을 보며 당시 어린 나는 시 속의 화자가 얼마나 엄마 아빠를 보고 싶어 했을까 하는 안타까운 마음을 가졌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중학교를 진학하면서 국어시간을 통해 「서시」와 「별 헤는 밤」을 읽으며 암울한 식민지 조국의 현실에 누구보다 가슴 아파하며 괴로워했던 한 청년 지식인을 발견해 내었다. 그렇게 동주는 나에게 혹은 우리들에게 각인되어 왔고, 또한 시인이라는 다소 범접하기 힘든 아우라(Aura)로 신비스럽게 다가오기도 했다.
그 「동주」가 2016년 이준익 감독에 의해 다시 영화로 태어났다. 거기엔 '몽규'라는 또 다른 인물을 데리고서 말이다. 일제강점이라는 시대의 폭압 속에 양극단으로의 선택만을 강요하는 당시의 현실처럼 영화는 모든 장면을 흑과 백으로 처리하며, 또한 등장하는 두 인물의 미묘한 갈등도 이를 통해 더욱 섬세하게 빚어내고 있다.
동주(강하늘 분)와 몽규(박정민 분)는 간도 명동촌에서 동갑내기로 사촌 간이라는 혈연적 관계뿐만 아니라 평생을 함께한 동지이기도 하다. 어릴 때부터 죽마고우였지만 서로의 성향이 달랐던 두 사람, 항상 불의(不義)에 관대하지 못하고 행동으로 이를 바로 잡으려는 혁명지향적 성격을 가진 몽규와 사색적이며 감성이 예민한 문학과 시를 사랑하여 이를 끊임없이 자신과 시대로 확장하려 했던 동주, 이 둘이 만들어가는 사건의 전개는 항상 몽규에게서부터 출발한다.
「술가락」으로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는 것에서부터 연희전문 시절 유인물 발간을 주도하고, 일본 유학 때 원하는 교토대학에 혼자 당당히 합격하며 또 마지막 항일운동에서까지 앞장 서는 몽규에게서 동주는 늘 부러움과 질투를 느낀다. 항상 뒤에 서 있는 자신의 모습을 되돌아보며 강한 자책과 함께 부끄러움을 동반하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이 영화의 매력은 몽규에 대한 '대타적 자아'로서 이런 동주의 모습을 고스란히 살려내었다는 것에 있을 것이다.
물론 몽규와 문학이 절박한 현실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라는 문제를 두고 경성 하숙방에서의 날을 세운 대립, 그리고 일제에 피검 후 수의를 입고도 끝까지 진술서에 날인하지 않은 동주의 숨은 정체성(正體性)은 정지용 시인을 만난 한 장면에서 충분히 가늠되기도 한다. 그가 그렇게 만나고 싶어 했던 시인과의 대화에서 진짜 부끄러워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를, 그리고 진정한 용기는 철저한 자기의 반성에서부터 나온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한편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라는 시인의 단호한 목소리는 영화 중잔 중간에 삽입되어 흘러나오는 여러 편의 시적 분위기를 그대로 대변하고도 남는다. 동주 역을 맡은 강하늘의 시 낭송은 각 장면 장면에 오롯이 녹아들어 식민지 시대, 그 무엇도 허용되지 않는 불구의 현실 앞에 흔히 역사책에 나오는 위대한 독립운동처럼 무엇을 이루어 내었는가가 아니라 평범한 일상인으로 어떻게 고민하며 이를 어렵게 살아내었는가를 잔잔히 관객들에게 전해주고 있다.
간도에서 머나먼 이국땅 일본의 후쿠오카 형무소에 이르기까지 끝내 조선어로 시를 쓰며 자신의 생을 말했던 그리고 생체실험에 의해 안타깝게 스물아홉의 꽃으로 진 한 젊은 영혼에 대해 5억이라는 저예산으로 만들어낸 영화의 무성한 후일담을 차치하고서라도 이준익 감독은 말하고 싶은 것이 분명 있을 것이다. 신화를 벗겨낸 인간 '동주'로서의 모습과 그가 끝내 닮고 싶어 했던 또 다른 자아인 '몽규'의 모습을 통해 그 미묘한 간극을 드러내면서도 이를 한편 메울 자리도 충분히 있다는 것을……, 마치 동주의 어느 시 구절에서처럼 관객에게 보여주고 싶지는 않았을까?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곰 내몰고/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 나는 나에게 적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으로 잡는 최초의 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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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에』2016-여름호 <에세이>에서
* 김요아킴/ 경남 마산 출생, 2003년 『시의나라』, 2010년 『문학청춘』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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