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영대역시집>
『어느 하늘 빈자리』/ 허윤정 지음
Somewhere in the Sky / Translated by Hur Man-Ho
시인의 말
허윤정
우선 나의 자유에 대하여 감사한다. 아름다운 나의 모국어로 시를 쓸 수 있다는 이 축복. 그리고 강산이 아름다운 내 조국에서 삶을 누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어느 숲에서 자고 왔을까? 창밖에 귀에 익은 새소리가 즐겁다. 그리고 찬란한 아침 햇살, 이밖에 무엇을 더 바라겠는가. 이 세상은 똑똑하고 잘난 사람들 때문에 더 시끄러운 것 아닌가 하고 생각한다. 그래서 좀은 어리석고 바보로 살고 싶은 것이다. 이름 없는 새 허공에 획을 그으며 지나가고, 어느 계곡 돌 틈에 혼자 피었다 지는 풀꽃처럼 살고 싶은 것이다.
형상 있는 존재의 세계보다 형상 없는 부재의 세계가 더 크고 영원하다는 사실을 시를 통해 터득하고 싶다. 말(言語)이란 결국 허구의 집이다. 우리 인간에게 말이 생기고부터 갈등과 분열이 저 항하사(恒河沙) 모래만큼 많은 세상이 되었다. 말로써 시를 쓴다는 것은 세상에 먼지를 하나 더 보태는 일이 될까 봐 걱정이 앞선다.
우리는 존재의 감옥에 갇혀서 살고 있다. 물질적 존재와 정신적 존재에서 어떻게 놓여날 수 있을까. 나는 항상 쫓기고 방황하는 내 모습을 보고 놀란다. 언제쯤이면 무위의 삶을 살면서 마음과 마음의 경계를 넘어 저 맑고 푸른 하늘처럼 살 수 있을까.
도대체 삶이란 무엇이며 시란 무엇인가? 종로거리의 많은 인파와 우후죽순 같은 문학잡지, 그 속의 많은 시들이 지금 우리가 살고 간 다음 지나는 어느 길손에게 잠시나마 기억이 되어줄까? 아침 산행길 이름 없는 호젓한 풀꽃처럼 말이다. 첫아이를 낳고 아픔을 잊어버린 임산부처럼 또 한 권의 시집을 엮는다.
경남여고 문예반 시절부터 여기까지 끌어주신 초정 김상옥 선생님과 사랑하는 가족 정태범 교수와 진근, 우근, 혜경과 손주 민섭, 준홍, 준휘, 소영, 연주를 위하여 이 영문 시집을 펴낸다. 이 시집을 영문으로 번역해 준 조카 허만호에게 감사한다.
2016년 7월에 영문 번역 시집으로 다시 펴내며
서울 서래마을에서
水兮 허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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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영대역시집『어느 하늘 빈자리』/ Somewhere in the Sky / 2016.7. 25. <글나무> 펴냄
* 허윤정/ 현대문학으로 등단(1977-1980), 맥(貘) 동인지 발행 편집주간, 한국여성문학인회 심의위원 역임, 한국시인협회기획위원, 국제펜클럽한국본부이사. 시집 『빛이 고이는 盞』『어느 하늘 빈자리』『無常의 강』외 다수
* Translator Hur Man-Ho/ Got a Master Degree of Theology at Yale University in U.S.A / Studied as a Ph D. Student at Clement University in U.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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