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두_ 가상 인터뷰>
천상병 : 김정임
김정임: 온갖 사람들의 행복을 비는 것이 문학이다. 평소 하신 말씀이 떠오릅니다. 바람 이전의 시간으로 돌아가 계신 선생님이 그립습니다.
천상병: 내가 살았던 수락산 밑 의정부시 장암동 384번지에서 거처를 옮겼지만 나는 여전히 문학을 좋아하는 분들의 전화를 이곳에서도 습관처럼 기다리고 있어요. 미안하지만 누구세요?
김정임: 시 쓰는 아득한 후배입니다. 선생님의 시는 독자를 웃게 하면서도 묘한 슬픔 쪽으로 불러들이는 울림이 있습니다.
천상병: 가난과 무직 그리고 주벽까지, 별나게 제멋대로 인생을 사는 동안 고통과 슬픔을 남달리 맛보았던 탓도 있지만 그러나 결국 사람이란 더없이 슬픈 존재이기 때문이오.
김정임: 젊은 날 문학을 논하고 예술을 사랑하셨던 순간들이 왜 갑자기 방황의 시간으로 변하셨나요.
천상병: 동백림사건이 내 생애를 엄청나게 뒤흔들어 놓았지요. 다시 돌이켜보면 그 일은 자연의 법칙처럼 시절의 운이 내게 그렇게 흘렀다 생각돼요. 과거의 고통을 통해서 기적을 체험하기도 했소. 고문 후유증으로 행려병자가 되어 입원해 있을 때 내가 죽었다고 생각한 친구들이 원고를 모아 유고시집 『새』를 발간, 그때부터 유명 시인이 되었으니까요.(웃음)
김정임: 가혹한 대가를 치르셨지만 운명은 대체로 친절한 것 같습니다. 천사 같은 사람, 대한민국에서 가장 위대한 여성이라고 친구들로부터 칭송받았던 목순옥 여사님을 이어 만나게 되셨으니까요.
천상병: 생애를 남의 동냥으로 지내던 나에게 아침마다 손바닥에 용돈 2천 원을 올려주며 환한 웃음으로 배웅하던 그녀는 천사였고 어머니였고 누이였죠.
김정임: 시는 어떻게 써야 하는 걸까요.
천상병: 거짓말하는 시는 시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인생의 진실은 여기저기 깔려 있고 시는 인생의 본질이지요. 생활 주변을 돌아보세요. 시로 가득합니다. 감성이 시에서는 지성보다 우위에 있어요. 시 외적인 것들, 자기 현시와 허영을 위해 시를 쓰고 있지는 않은지, 옛날의 잃어버린 시간을 생생하게 되살릴 수 있다면 이승은 허전하기는 하나 그래도 살 만한 곳이오.
김정임: 이승에 이러고 있는 것이 가끔 꿈인가 싶을 때가 있습니다.
천상병: 나는 늘 꿈속을 살고 있어요. 하늘에서 잠자고 구름처럼 가는 이곳이 심심해 옛날로 돌아가고 싶을 때가 있다오. 좋은 시나 몇 편 남기고 천국으로 가야 할 텐데…. 늘 그렇게 생각했는데, 나 아닌 다른 사람들의 도움으로 이곳에 와 있어요. "생각느니, 아, 인생은 얼마나 깊은 것인가." 「소릉조」의 한 구절이오. 이야기 나눠서 즐거웠어요. 계속 당신의 시를 쓰기 바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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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상병(1930~1993, 63세)
1930년 1월 29일 일본 효고현 출생, 해방 후 마산에서 자람, 서울 상과대 수료
1952년 『문예』에「갈매기」로 추천 완료,『현대문학』에 월평 집필, 한국전쟁 초기 미군 통역관으로 6개월, 김현옥 부산 시장의 공보비서로 2년간 근무함
1967년 동백림 사건에 연루되어 고초를 겪기도 함
1971년 서울시립 정신병원에 입원해 있는 중에 유고시집 『새』가 나와 살아 있으면서 첫 시집을 유고시집으로 낸 유일한 시인이 됨
시집 『괜찮다 괜찮다 다 괜찮다』『요놈 요놈 요 이쁜 놈』, 시선집『주막에서』『구름 손짓하며는』, 동화집『나는 할아버지다 요놈들아』, 사후 유고시집『나 하늘로 돌아가네』등
1993년 4월 28일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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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문학』2016-7월호 <권두 _ 가상 인터뷰> 전문
* 김정임/ 대구 출생, 2002『미네르바』, 2008《강원일보》로 등단, 시집『붉은사슴동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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