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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사 포커스_이장욱 / 이메일 대담

검지 정숙자 2016. 7. 24. 13:00

 

 시사사 포커스_ 이장욱 / 이메일 대담

 

 

    조금 비껴난 조금 어긋난,

   그러나 깊은 크레바스

 

 

  1 최근 근황이 어떠신가요?

 

  출근하고 일하고 퇴근하고 자고 일어나고 글 쓰고 글 읽고 놀고 멍하니 있고 그렇습니다. 때로는 아프고 때로는 아프지 않고 주위에 죽어가는 사람이 있고 죽어가는 사람이 없고 그 사람을 생각하고 그 사람을 생각하지 않고 무의미하다고 생각하고 무의미하다고 생각하지 않고 다시 출근하고 일하고 퇴근하고 글 쓰고 멍하니 있고…… 그렇습니다.

 

  2 선생님의 시 중에서 유독 아끼는 시가 있으신가요?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아끼는 시는 언제나 최근에 쓴 시입니다. 최근에 쓴 시가 마음에 들면 기분이 좋아지고 최근에 쓴 시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우울해지기 때문입니다.

 

  3 바쁜 생활 속에서도, 간혹 찾아오는 허무감 속에서도 계속 시를 쓰게 하는 이유가 있을 것 같습니다.

 

  바쁜 생활 속에서도 바쁘지 않은 생활 속에서도 허무감 속에서도 허무하지 않은 느낌 속에서도 시를 씁니다. 시는 그런 것들에서 조금 비껴난 조금 어긋난 다른 곳에 있기 떄문입니다. 조금 비껴난 조금 어긋난, 그러나 깊은 크레바스입니다.

 

  4 문학 외에 다른 관심사는 무엇인가요?

 

  아주 많습니다. 가정사 직장일 정치 경제 사회 이념 크고 작은 생각들 엉뚱한 생각들 문득 좋아지는 음악들 좋아했는데 잊은 음악들 재미있는 영화들 볼 때는 데면데면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생각나는 영화들 내년 남한 대선 올해 미국 대선 버니 샌더스 트럼프 프로야구 순위 잔인한 삶 잔인한 세계…… 이 모든 관심사들이 사라진 어느 시간의 나 자신에 대하여.

 

  5 글을 쓸 때 가지고 계신 버릇 같은 것이 있나요? 또 시를 쓰는 데 있어 가장 중요시하는 것이 있나요?

 

  특기할 만한 버릇이 없습니다. 버릇은 없을수록 좋다고 생각합니다. 글을 쓸 때 점점 더 많은 창을 띄워놓고 써야 한다는 것이 좋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창문은 단 하나면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6 마음을 다쳤을 때 자신을 추스르는 방법이 있습니까?

 

  3인칭으로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는 왜 마음을 다쳤을까? 왜나하면 그는…… 이라는 식으로.

 

  7 현재의 삶에서 시인으로서 불편한 점이 있다면?

 

  삶이란 대체로 불편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침에는 일어나기 싫고 일 때문에 바빠서 글 쓸 시간이 없고 글 쓸 때는 잘 안 돼서 피곤하고 밤에는 힘든 꿈을 꿉니다. 하지만 나 자신은? 역시 이상하게 보이고 기괴하다고 생각할 때가 많아집니다.

 

  8 앞으로의 계획을 말씀해주세요

 

  5월이나 6월쯤에 시집이 발간될 것 같습니다. 여름에는 칩거하면서 긴 글을 쓰고 싶습니다. 하지만 언제나 그래왔듯이 잘 되지 않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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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사사』2016. 5-6월호 <시사사 포커스 / 이메일 대담>에서

   * 이장욱/ 1994년 『현대문학』으로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