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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이라는 운명과 무모함의 힘/ 조동범

검지 정숙자 2016. 7. 13. 12:31

 

  시인동네월간지 전환에 따른 기대와 전망        

 

 

     문학이라는 운명과 무모함의 힘

 

     조동범  

 

 

  계간『시인동네』가 2016년 여름호를 마지막으로 월간으로 전환한다. 현재 시전문지로는 『현대시』『현대시학』『시와표현』등이 있지만 계간지의 비중이 절대적으로 높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재정적인 측면에서의 문제가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칠 것이다. 월간으로 문예지를 발행한다는 것은 여러 장점에도 불구하고 재정적인 어려움 때문에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시전문지를 발행하다는 것이 애초에 상업적 측면이 배제된 것일 수밖에 없기는 하지만 월간지 발행에 따른 비용을 감당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더구나 문학계 전반이 침체된 상황에서 시전문지를 발행한다는 것은 여러 가지 어려움을 전제로 한 것일 수밖에 없다. 사실 『시인동네』의 경우에도 이번 월간 전환에 대한 의견이 분분했다. 발행인인 고영 시인의 확고한 의지가 있었기 때문에 월간지 전환 자체는 확정적이었지만, 이러저러한 고민과 우려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동안 『시인동네』는 기존의 시전문지가 지니고 있는 상투적 포맷에서 벗어나고자 노력했으며 천편일률적인 내용을 극복하고자 했다. 물론 『시인동네』의 경우에도 기존 문예지의 포맷에서 완전히 자유로웠다고는 볼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전체적인 편집과 기획 특집 등에서 기존 시전문지가 지니고 있던 상투성을 극복하고자 노력해왔다. 그리고 그것은 어느 정도의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시인동네』가 처음 발행될 때만 하더라도, 편집위원인 나에게 직간접적으로 문예지 발행의 어려움에 대해 우려 섞인 이야기를 하는 분들이 많았다. 이야기의 방식은 달랐지만 어려운 시기에 『시인동네』를 발행하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시인동네』는 비교적 빠르게 안정되었고 시단의 주목에 값하는 문예지로서 나음의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이러한 시점에서 다시 한 번 변화와 도약을 모색하고자 하는 것이 『시인동네』의 입장이다. 물론 그것이 쉽지는 않을 것이고, 걱정스러운 부분 역시 없지는 않지만, 계간 『시인동네』를 지금까지 안정적으로 이끌어온 만큼 그것이 불가능한 것만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번 월간 전환이 단순히 지면을 확대하여 시단에서의 영향력을 확장시키는 쪽으로 흘러가서는 안 될 것이다. 영향력이 확장되는 것을 나쁘다고 볼 수는 없지만 그것 자체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월간 『시인동네』가 나아갈 방향은 기존의 문예지가 가지고  있는 질서를 벗어나는 것이다. 하지만 독립잡지가 아닌 이상 전복적인 변화보다는 적정선에서의 변혁을 추구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토록 당연한 당면 과제가 결코 쉬운 것은 아니다. 독립잡지와 시전문지, 나아가 종합계간지 사이에서 적정선의 변화를 도모한다는 것은 이도저도 아닐 수 있는 위험을 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월간지는 계간지에 비해 문단의 여러 사안에 대해 즉각적인 반응이 가능하고 지면이 확대된다는 장점을 지니고 있지만, 특집 등의 기획 원고의 깊이와 집중도가 약화될 여지가 있기도 하다. 또한 매월 발행되는 시전문지가 기존 계간 시전문지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할 때, 유사한 포맷의 반복적 생산이라는 한계에 부딪힐 염려도 없지 않다. 월간 『시인동네』는 바로 이와 같은 지점을 극복하기 위해 기존 문예지의 포맷을 최대한 벗어나는 것이 관건일 것이다.

  지난달에 있었던 편집회의도 이러한 부분에 집중하여 논의가 이루어졌다. 기존 문예지의 상투적인 포맷을 벗어난다는 것은 잡지의 기획은 물론이고 디자인과 판형에 대한 모든 것을 포함한다. 그리고 거기에 더하여 잡지 가격의 문제까지도 논의의 대상이 되어야만 한다. 월간 『시인동네』는 일단 핸디한 판형과 파격적인 가격을 통해 독자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통로를 마련하고자 했다. 월간 『시인동네』는 내용 역시 기존 시전문지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많은 변화를 시도할 예정이다. 시를 중심으로 문학과 예술을 다루는 잡지인 만큼 시와 산문, 비평, 인접예술이라는 기본적인 틀을 벗어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창의적인 방법론을 통해 이러한 포맷이 좀 더 읽을 만한 것이 되도록 할 예정이다.

  월간 『시인동네』는 독립잡지일 수도, 종합문예지일 수도 없다. 특히 기존의 시전문지의 방식이어서는 더더욱 안 된다. 여기에 월간 『시인동네』를 만드는 우리의 고민이 있다. 하지만 그 고민은 월간 전환을 결정한 이상 필수적으로 넘어야 할 산일 것이다. 독립잡지가 지니고 있는 새로움의 측면을 수용하면서도 그것이 하나의 방향성만을 담보해서는 안 된다. 또한 기존 잡지가 지니고  있는 상투성은 버리면서도 최소한의 보편성을 확보해야 할 것이다.

  그동안 우리 시단은 천편일률적인 문예지를 양산함으로써 스스로 자기 자신을 부정하는 결과를 만들었다. 심지어 동인지 체제로 운영되는 문예지가 잡지의 이름으로 발행되는 사례도 없지 않았다. 그럼으로써 시전문지는 아무도 읽지 않는, 시인들만의 무가지로  전락해버렸다. 이곳저곳에서 시전문지가 발행되지만 그것을 두고 마냥 시의 부흥기라고 부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생각해보면 시전문지의 양적 부흥기는 오히려 시의 몰락을 대변하는 자조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습작생들조차 대부분의 시전문지를 알지 못하는 지금의 상황이 분명 정상은 아니다. 그리고  당연히 이것은 습작생의 문제라기보다 넘쳐나는 문예지와 자정작용을 상실한 시단의 문제이다. 물론 이 모든 시단의 상황으로부터 『시인동네』역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음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러한 한계를 넘으려는 노력마저 헛된 것일 수는 없으리라 생각한다. 계간『시인동네』를 월간 『시인동네』로 전환하는 것이 어떤 결과로 나타날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이러한 시도는 그 자체만으로도 커다란 가치를 지니는 것임에 분명하다.

  『시인동네』의 이번 시도가 다소 무모해 보일지라도 다시 한 번 믿고 지지해주시기를 바란다. 생각해보면 우리가 문학을 시작한 것 자체가 무모함에 대한 도전이지 않았던가. 계간 『시인동네』라는 무모함이 오늘날 하나의 씨앗이 되었던 것처럼, 월간 『시인동네』라는 무모함 역시 그 어떤 사건의 단초가 될 것임을 믿는다. 시인이 무모함의 힘을 믿고 나아갈 때라야 문학이라는 하나의 운명과 만날 수 있는 것처럼, 『시인동네』역시 그러한 무모함의 힘을 믿고 나아가리라 다짐한다. 시단의 여러 선후배와 동료들의 애정어린 관심과 지지를 기대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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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동네』2016-여름호 <『시인동네』월간지 전환에 따른 기대와 전망>에서

  * 조동범/ 2002년 『문학동네』로 등단, 시집『심야 배스킨라빈스 살인사건』『카니발』『금욕적인 사창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