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 프로젝트-16
정숙자
내가 딸기를 사지 못하는 이유// 값비싼 탓(특히 겨울딸기)도 있지만
그렇게 예쁜 걸 어떻게 먹나? 고 새빨간 색, 고 순한 살, 고 못난 씨… 사
나운 데라곤, 뻣뻣한 데라곤 없는 고걸 그냥 막 깨물어 먹는다는 게 왠
지 뭔가 잘못하는 일인 것만 같다
사과 배 무 당근들과는 그 질감부터가, 크기부터가 다르지 않나? 고
딸기를 깨무는 치아(齒牙)의 기분은 편치가 않다. 앵두나 버찌 같지도
않다. 걔네는 명색이 껍질도 있고 또렷한 씨도 안쪽에 배치하지 않았는
가. 나에게 딸기는 결코 쉽지가 않다.
나비가 요정들의 노래라면, 딸기는 요정의 뺨 정도가 아닐까.
점점이 붙여놓은 씨앗은 요정들이 나눴던 이야기인지도 몰라.
옆집 부인이 설 지난 우정으로 딸기 두 팩을 사왔다. 아 이것이 고구
마였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팍팍 베물어도 될 것 같은, 푹푹 삶아도 즐
거울 것 같은 감자나 뭐 그런 거…, 씻다가 물크러진 두어 개는 바로 먹
고 나머지는 냉동실에 들여놨다.
고 아까운 것들을 단시간에 먹을 수는 없기 때문에…, 두세 개씩 언제
라도 주스라도 만들 일 있을 때 약으로 넣으려는 것이다. 딸기! 애들이
오면 그때 옆집 부인의 선물이라고 알려주기도 하면서 요정의 미소어린
향기와 함께, 그때는 딴생각 없이.
*『시담』2016-여름호(창간호)
'그룹명 > 나의 근작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슬 프로젝트-20 (0) | 2016.09.03 |
---|---|
이슬 프로젝트-18 (0) | 2016.07.25 |
이슬 프로젝트-17 (0) | 2016.06.13 |
협시 7 (0) | 2016.05.13 |
협시 6 (0) | 2016.05.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