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나의 근작시

협시 7

검지 정숙자 2016. 5. 13. 18:08

 

 

         협시 7

 

       정숙자

 

 

  결국 만나고야 마는 도플갱어// 선생님, 지금 붙잡은 이 글은 선

생님께 부치려는 두 번째 편지입니다. 오늘이 음력 섣달 스무나흘,

설이 바짝 눈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저도 내일부터는 차례음식 준비

에 들어가려 합니다.

 

   저는 예전부터 이따금 탁선(託宣)을 경험해왔습니다. 당시엔 궁금

히 여기다가도 시간이 지나면 ‘아, 그게 탁선이었구나’ 경계를 넘나들

곤 하지요.

 

   제가 마흔 살 때, 그러니까 25년 전, 현재 살고 있는 이 집에 이사

를 들었습니다. 신혼시절부터 아껴 모은 돈으로, 빚까지 내어 근 20

년 만에 마련한 ‘내 집’에 깃든 것입니다. 그런데 그 첫 날 밤, 안

잊히는 꿈이 꾸어졌습니다. 머리 희끗한 한 남자가 앉은뱅이책상에

서 책 읽는 모습을 본 것입니다. 그 분이 책 읽던 그 자리는, 예나

지금이나 이 집에서 가장 폭넓은 책장이 있는 거실입니다. 어떤 분이

그러더군요. “터주가 학자이신가 봐요.” 저는 그 말씀이 참으로 좋았

습니다.

 

   그리고는 20여 년이 지난 어느 날, 저는 그 사람이 바로 자신이었

다는 걸 감지했습니다. 머리 희끗한! 이제는 여성일 필요도 없는, 다

만 책 읽는 한 영혼으로서 밤이나 낮이나 꿈에 본 그 자리에 제가

앉아 있는 것입니다. 도대체 어찌된 무엇일까요? 20년 전에오늘

의 제가거기 와 있었다는 사실을… 20년 전에 20년 후의 저 자신

을 만났다는 사실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그러므로 저는 이 세상에서 만나야 할 모든 사람을 다 만난 것일까

요?

 

   이제 또 새로운 자신을 만나기 위해 파란 밤을 멀리 꿈꾸어야 할까

요?

 

 

    *『全北文學』2016. 4. 29. 발행/ 27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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