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시 7
정숙자
결국 만나고야 마는 도플갱어// 선생님, 지금 붙잡은 이 글은 선
생님께 부치려는 두 번째 편지입니다. 오늘이 음력 섣달 스무나흘,
설이 바짝 눈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저도 내일부터는 차례음식 준비
에 들어가려 합니다.
저는 예전부터 이따금 탁선(託宣)을 경험해왔습니다. 당시엔 궁금
히 여기다가도 시간이 지나면 ‘아, 그게 탁선이었구나’ 경계를 넘나들
곤 하지요.
제가 마흔 살 때, 그러니까 25년 전, 현재 살고 있는 이 집에 이사
를 들었습니다. 신혼시절부터 아껴 모은 돈으로, 빚까지 내어 근 20
년 만에 마련한 ‘내 집’에 깃든 것입니다. 그런데 그 첫 날 밤, 안
잊히는 꿈이 꾸어졌습니다. 머리 희끗한 한 남자가 앉은뱅이책상에
서 책 읽는 모습을 본 것입니다. 그 분이 책 읽던 그 자리는, 예나
지금이나 이 집에서 가장 폭넓은 책장이 있는 거실입니다. 어떤 분이
그러더군요. “터주가 학자이신가 봐요.” 저는 그 말씀이 참으로 좋았
습니다.
그리고는 20여 년이 지난 어느 날, 저는 그 사람이 바로 자신이었
다는 걸 감지했습니다. 머리 희끗한! 이제는 여성일 필요도 없는, 다
만 책 읽는 한 영혼으로서 밤이나 낮이나 꿈에 본 그 자리에 제가
앉아 있는 것입니다. 도대체 어찌된 무엇일까요? 20년 전에… 오늘
의 제가… 거기 와 있었다는 사실을… 20년 전에 20년 후의 저 자신
을 만났다는 사실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그러므로 저는 이 세상에서 만나야 할 모든 사람을 다 만난 것일까
요?
이제 또 새로운 자신을 만나기 위해 파란 밤을 멀리 꿈꾸어야 할까
요?
*『全北文學』2016. 4. 29. 발행/ 27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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