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나의 근작시

협시 6

검지 정숙자 2016. 5. 13. 01:35

 

 

   협시 6

 

   정숙자

                               

      

최승범 선생님께// 안부 여쭙지 못한 지 오래되었습니다. 단 하

도 푹 잠잔 날 없을 정도로 시간을 아끼는데도 왜 이렇게 늘 분초

부족한지 모르겠습니다. 선생님 친필 서한을 받은 그때로부터 ‘원

를 써야지!’ 별렀습니다만, 오늘에야 옷깃을 여미게 되었습니다.

엔 선생님께 편지를 올리는 편이 가장 맑고 따뜻한 시가 아닐까

여겨집니다.

 

언젠가 선생님께서 저의 당호(堂號)를 상기시켜 주셨을 때, ‘아차!’

싶었습니다. 20여 년 저쪽에 묻어둔 자신을 문득 재회했기 때문이지

요. 93년 4월에 나온 저의 세 번째 시집『이 화려한 침묵』자서(自

序)의 끝자락에도 적혀 있는 “공우림(空友林)에서”, 이 당호는 ‘벗이

없는 숲’이라는 의미로 그 무렵의 제 처지를 그대로 수용한 음영이었

습니다.  

 

그런데 적잖은 세월을 건넌 지금도 제 추녀가 공우림이라는 점,

점이 저로 하여금 하 많은 반성을 들끓게 했습니다. 어떤 모순이

재주를 부리는 걸까요? 혹시 공우림은 너무나도 잘 짚은 제 운명의

집약일까요? 하지만 그 적소를 거슬러 저는 다른 공우림에 접어들었

습니다. 벗이 없는 숲이 아니라 ‘공기가 벗인 숲’을 소유/ 소요하게

된 것입니다.

 

이제 막 저녁 산책에서 돌아왔습니다. 역시 공기를 벗 삼으면서요.

공기는 집안에서나 밖에서나 저를 해치지 않습니다. 항상 마음 깊이

도와줍니다. 제가 펼쳐 들고 읽는 책 위에서 조용히 발걸음을 비춰주

며 어루만져 줍니다. 공기와 저는 암만 생각해도 피를 나눈 사이이자

한 그루의 숲입니다. 선생님, 부디 오래오래 건강하시기만을 빌고 빕

니다.

 

   

  *『全北文學』2016. 4. 29. / 274호

'그룹명 > 나의 근작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슬 프로젝트-17  (0) 2016.06.13
협시 7  (0) 2016.05.13
이슬 프로젝트-15  (0) 2016.03.05
이슬 프로젝트-14  (0) 2016.02.24
측면의 빛  (0) 2016.0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