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고 시인의 시

전해수_'푸른 것'을 찾아서/ 소릉조(小陵調)-70년 추석에 : 천상병

검지 정숙자 2016. 1. 12. 15:10

 

 

  『시와표현』2016-1월호 <한국 시단의 별들_평론/ '푸른 것'을 찾아서(발췌)_ 전해수

 

 

    소릉조(小陵調)

    - 70년 추석에

 

    천상병(1930~1993)

 

 

  아버지 어머니는

  고향 산소에 있고

 

  외톨배기 나는

  서울에 있고

 

  형과 누이들은

  부산에 있는데

 

  여비가 없으니

  가지 못한다.

 

  저승 가는 데도

  여비가 든다면

 

  나는 영영

  가지도 못하나?

 

  생각느니, 아,

  인생은 얼마나 깊은 것인가.

 

 

   ▶한국 시단의 별들】'푸른 것을 찾아서-천상병의 시, 다시 읽기(발췌)_ 전해수

  '푸르지 않은 것'의 대명사가 가난과 병마인 것처럼 특히 '가난'은 부정적 요소를 짊어지고 우리에게 현실적으로 와 닿는다. 위 시에서 소릉(小陵)은 두보의 호인데 천상병에게 닥친 가난한 처지와 의식이 모두 두보 식의 깨달음에서 출발하고 있다. 훌륭한 시인에게 가난은 시의 힘이 되며, 깨달음은 인생의 쓴 맛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천상병은 위 시에서 (두보 식으로) 깊은 인생의 깨달음을 읊조리려는 태도가 엿보인다.

  추석을 맞아 아버지 어머니의 산소를 찾아보지 못하며 "여비" 걱정을 해야 하는 가난한 시인의 궁핍함이 가족 간의 단절로 드러난다. 고향 가는 "여비"는 결국 "저승길"의 노잣돈으로 확장(擴張)되고 '여비 없음'은 자신의 결핍의 삶에서 "저승"가는 길마저 녹녹치 않을 것이라는 인식에 이르도록 한다. 시인의 무욕의 삶이 두보 소릉의 시구처럼 담담하게 진술되어 있는 것이다. 천상병 시인은 현실적 고난과 물질적 궁핍을 받아들이는 자세가 이처럼 철학적이다. 위 시의 마지막 연처럼, 가난의 생 체험을 통해 "생각느니" 인생은 참으로 굴곡지고 "깊은 것"일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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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상병(千祥炳)/ 1930.1.29.~1993.4.28. 일본 효고현(兵庫縣) 히메지시(嬉路市) 출생. 마산중학을 거쳐 서울대 상대를 중퇴. 1949년 마산중학 5학년 때 『죽순(竹筍)』11집에 시 「공상(空想)」외 1편을 추천. 1952년『문예(文藝)』에 「강물」「갈매기」등을 추천받은 후 여러 문예지에 시와 평론 등을 발표. 1967년 7월 동베를린공작단사건에 연루되어 6개월간 옥고를 치름. 1971년 가을, 문우들이 주선해서 내준 제1시집『새』는 그가 소식도 없이 서울시립정신병원에 수용되었을 때, 그의 생사를 몰라 유고시집으로 발간.『주막에서』『귀천(歸天)』『요놈 요놈 요 이쁜 놈』 등의 시집과 산문집『괜찮다 다 괜찮다』 그림 동화집『나는 할아버지다 요놈들아』 미망인 목순옥(睦順玉)이 1993년 8월 『날개 없는 새 짝이 되어』라는 글모음집을 펴내면서 유고시집『나 하늘로 돌아가네』를 함께 펴냈다.

  * 전해수/ 2002년 『문학선』으로 등단, 평론집『목어와 낙타 외. 현재 동국대, 홍익대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