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고 시인의 시

김점용_풍경과 상처/ 처용단장_1의4 : 김춘수

검지 정숙자 2015. 12. 27. 14:38

 

 

 문예바다』2015-겨울호 <화보/ 풍경과 상처 9>_김점용

 

 

    처용단장

    -1의 4

 

    김춘수(1922~2004, 향년 82세)

 

 

  눈보다도 먼저

  겨울에 비가 오고 있었다.

  바다는 가라앉고

  군함(軍艦)이 한 척 닻을 내리고 있었다.

  여름에 본 물새는

  죽어 있었다.

  물새는 죽은 다음에도 울고 있었다.

  한결 어른이 된 소리로 울고 있었다.

  눈보다도 먼저

  겨울에 비가 오고 있었다.

  바다는 가라앉고

  바다가 없는 해안선(海岸線)을

  한 사나이가 이리로 오고 있었다.

  한쪽 손에 죽은 바다를 들고 있었다.

 

 

  저는 이 시를, 저의 고향이자 시인의 고향인 통영의 풍경과 겹쳐 읽습니다. 그래야 쉽게 이해되기 때문입니다. 물론 시인은 역사의 '맥락'에서 벗어난 자율적인 주체로서 '무의미 시'를 썼다지만, 문학이 놓인 본래의 자리를 생각하면 독자에게 무의미 시란 애초에 가능하지 않습니다. 시에서, "바다가 가라앉"는다는 건 뭘까요? 그 자리에 군함이 있다는 것도, 썰물이 되면 바다는 해안선 저 아래로 쑥 가라앉습니다. 그러면 강구안 건너 조선소에서 건조 중인 배들이 보이고, 그 너머로는 검은 군함도 몇 척 떠 있는 게 들어오지요. 그런데 "죽은 바다"라뇨? 죽은 물새거나 물고기의 환유쯤 될 겁니다. 죽은 물새가 바다를 다 거둬 가 버렸다는군요. 따뜻한 남쪽이라 한겨울에도 눈 대신 비가 오는 통영. 비 내리는 통영 갯가의 을씨년스런 풍경 속에, 맑은 소줏잔 하나 내려놓습니다. (김점용/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