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국지성 안개/ 정다인

검지 정숙자 2015. 12. 2. 02:16

 

 

    국지성 안개

 

     정다인

 

 

  당신의 내부는 이제 당신 안에 있지 않다 우리 사이를 둥둥 떠다니며

자꾸만 풀어헤쳐지는 보자기를 적신다 아무에게도 이해되지 못한 안개

의 입자들, 당신의 슬픔은 무해하다

 

  누군가에게 닿은 적 없는 순결한 백치, 고가 맺히지 않은 눈을 깜빡거

리며 당신은 모래의 영혼을 따라간다 서걱서걱 입 안으로 허물어지는

의미들, 당신의 슬픔은 위독하다

 

  알약 같은 혼잣말을 물도 없이 씹어 삼키며

  어깨가 슬쩍, 코가 씰룩

  당신은 물이 새는 커다란 보자기

 

  세상을 향해 천천히 스며드는, 얼굴이 다 녹아버린

  당신은 모서리를 둥글게 궁굴린 사라져가는 문체

  안부마저 물을 수 없는 마지막 새떼

 

  새하얀 날개와 새하얀 물기와 새하얀 문장들이 당신에게서 흘러나온다

 

  십일월의 달을 그러모아 잘게 부순 것처럼 아득한 당신의 눈빛을 무엇

이라 부를까 우리를 둘러싸고 아직도 돌고 있는 살아있지도 죽어있지도

않은, 당신이라는 낯선 병명

 

  세상이 다 들어차고도 아직 서성이고 있는

 

  눈 밑이 검은 당신이 투명과 불투명 사이로 천천히 투신하고 있다

 

 

  *『열린시학』2015-겨울호 <이 계절의 시>에서

  * 정다인/ 2015년 『시사사』로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