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청
고경자
소리들이 방향을 잃고 사라진다.
어떤 소리들은 탈출을 시도하다 잡히기도 한다.
소리굽쇠 끝에서 내가 들어보지 못한
소리가 툭 튀어나와 소리와 눈의 관계가
아무 것도 아님을 밝힌다.
그래도 눈은 소리를 떠나지 못한다.
떠나갔다 돌아온 바람은 소리를 배신할 것이다.
어제처럼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소리는 자신이 만든 말과 목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다.
소리를 가둬두려는 귀의 고전적 습성 때문에
고백할 것이 있는데요
나는 소리를 잘 들을 수 없어요
어디로 갈지 모르는 것들을 억지로 감옥에 가둔 것은
내 의지가 아니라는 거 알고 있죠?
언젠가 이것이 음모라고 밝혀질 거예요
소리들이 떠난 그곳에 가면 진실이 있을 거라구요.
의사선생님은 보청기를 권하고
나는 소리를 들리는 것까지만 듣기로 한다.
*『시와사람』2015-가을호 <신작특집>에서
* 문정영/ 1997년『월간문학』으로 등단
'잡지에서 읽은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고별/ 노천명 (0) | 2015.09.05 |
---|---|
저녁의 변이/ 강서완 (0) | 2015.09.05 |
줄/ 문정영 (0) | 2015.09.04 |
안지영_ 지난 계절의 좋은 시/ 그늘족 : 홍일표 (0) | 2015.09.04 |
국지성 편서풍/ 정다인 (0) | 2015.09.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