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줄/ 문정영

검지 정숙자 2015. 9. 4. 23:50

 

 

      줄 

 

      문정영

 

 

  나를 건너려고 너를 잡는 순간

  하나는 여기 있고 또 하나는 멀리 있다

  하나는 건너가고 하나는 건너온다

 

  쓸쓸한 것 오래되어 멀리 있는 너를 한 손으로 잡으면 두려움이 출

렁인다

  그때 내가 잡고 있는 네가 생명인 줄 알았는데 그 길 건넌 후 나는

너를 돌아볼 수 없었다

 

  누군가는 가는 줄을 잡고 건너가고 있고, 다른 누군가는 오는 줄을

잡고 건너오고 있다

  무어라 물으면 가는 사람과 오는 사람 말이 다르다

 

  한때 건너려는 길이 같았고, 그 길 건너려 따뜻한 손 너에게 내민

적이 있었다

  손을 놓으면 그 아래는 문신한 눈썹 같은 상처뿐이다

  그러나 치명적인 줄 알면서도 그 손 놓아야 하는 순간이 온다

 

  네가 줄이고 내가 길이었을 때, 가끔은 네가 길이고 내가 줄이었을 때

아무 것 묻지 않고 서로를 건너던 때가 있었다  

 

 

   *『시와사람』2015-가을호 <신작특집>에서

   * 문정영/ 1997년『월간문학』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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