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고별/ 노천명

검지 정숙자 2015. 9. 5. 14:09

 

 

 『시와표현』2015-가을호 <한국 시단의 별들>에서

 

  

     고별

 

     노천명(1911~1957) 

 

 

  어제 나에게 찬사와 꽃다발을 던지고

  우레 같은 박수를 보내주던 인사들

  오늘은 멸시의 눈초리로 혹은 무심히

  내 앞을 지나쳐 버린다.

  청춘을 바친 이 땅

  오늘 내 머리에는 용수가 씌워졌다.

  고도(孤島)에라도 좋으니 차라리 머언 곳으로

  나를 보내다오.

  뱃사공은 나와 방언이 달라도 좋다.

  내가 떠나면

  정든 책상은 고물상이 업어 갈 것이고

  아끼던 책들은 천덕구니가 되어 장터로 나갈 게다.

  나와 친하던 이들. 또 나를 시기하던 이들

  잔을 들어라. 그대들과 나 사이에

  마지막인 작별의 잔을 높이 들자.

  이것은 다 어디 있는 것이냐

  생쥐에게나 뜯어 먹게 던져 주어라

  온갖 화근이었던 이름 석 자를

  갈기갈기 찢어서 바다에 던져 버리련다.

  나를 어디 떨어진 섬으로 멀리멀리 보내다오.

  눈물 어린 얼굴을 돌이키고

  나는 이곳을 떠나련다.

  개 짖는 마을들아

  닭이 새벽을 알리는 촌가들아

  잘 있거라

  별이 있고

  하늘이 보이고

  거기 자유가 닫혀 지지 않는 곳이라면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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