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표현』2015-가을호 <한국 시단의 별들>에서
고별
노천명(1911~1957)
어제 나에게 찬사와 꽃다발을 던지고
우레 같은 박수를 보내주던 인사들
오늘은 멸시의 눈초리로 혹은 무심히
내 앞을 지나쳐 버린다.
청춘을 바친 이 땅
오늘 내 머리에는 용수가 씌워졌다.
고도(孤島)에라도 좋으니 차라리 머언 곳으로
나를 보내다오.
뱃사공은 나와 방언이 달라도 좋다.
내가 떠나면
정든 책상은 고물상이 업어 갈 것이고
아끼던 책들은 천덕구니가 되어 장터로 나갈 게다.
나와 친하던 이들. 또 나를 시기하던 이들
잔을 들어라. 그대들과 나 사이에
마지막인 작별의 잔을 높이 들자.
이것은 다 어디 있는 것이냐
생쥐에게나 뜯어 먹게 던져 주어라
온갖 화근이었던 이름 석 자를
갈기갈기 찢어서 바다에 던져 버리련다.
나를 어디 떨어진 섬으로 멀리멀리 보내다오.
눈물 어린 얼굴을 돌이키고
나는 이곳을 떠나련다.
개 짖는 마을들아
닭이 새벽을 알리는 촌가들아
잘 있거라
별이 있고
하늘이 보이고
거기 자유가 닫혀 지지 않는 곳이라면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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