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여는세상』2015-가을호 <지난 계절의 좋은 시/ 안지영 : 사라져가는 꿈의 세계> 에서 발췌
그늘족
홍일표
저들이 모르는 나라에는 오늘도 혼자 사는 아침이 있고 혼자라는 계]
단이 있다
공중에서 떼어낸 새들이 푸드덕거린다 몇몇 나비들이 그를 조상하
고 어디엔가 다른 하늘이 있을 거라고 말하는 예언자들이 나무 꼭대
기에 죽은 부엉이를 올려 놓는다
내 안에서 누가 총을 쏜다 다연발 권총이다 퍽퍽 당미가 핀다 피의
수요일이다 벙어리가 된 광장을 가로질러 집으로 돌아왔는데 발이
없다
나는 쓸쓸한 아침을 위로하는 방법을 궁리하다가 멸망한 제국이 박
하사탕처럼 희어질 때까지 지저귀는 땅속의 새를 본다
가끔 돌 틈에서 꽃잎으로 진화한 새의 펴정을 발견한다
두 다리를 만지면서 아침이 살아있음을 확인하고 나는 매 순간 결심
하는 바다를 깨며 걸어간다 왼쪽 가슴이 사라진 재앙 속으로
- 『실천문학』2015-여름호-
홍일표는 이 몰락하는 종족의 이름을 '그늘족'이라고 부른다. 이들은 지그문트 바우만의 말처럼 마지막 사적 영역이자 최후의 주권으로 남아 있는 고독을 지켜내기 위해 혼자임을 선택한다. 헌데, 이들의 고독은 점점 그 높이를 상실해간다. 비밀스럽게 간직해야 하는 계단의 높이는 빛이 상실된 세계에서 의미 없는 것이 되어버린다. 고독은 다만 쓸쓸한 명예가 되어 박하사탕처럼 그 빛이 바래가는 듯하다. 몇몇 나비들만이 그들의 몰락을 애도하고, 황혼에서야 비로소 날개를 편다는 예언자들의 동반자 부엉이는 시체나 되어 나무 꼭대기에 올려 놓아져 있다. 그래서인가. 이런 세계에서 그들은 자신이 살아있다는 실감을 발견하기가 어려워진다. "멸망한 제국"처럼 자꾸만 발이 사라져 간다. 이들의 그늘은 심연도 아니며 빛과 어둠의 모호한 경계일 뿐이다. 어째서 시인은 그늘에 머물러 있는가. 어째서 그들은 내면에 자신들만의 장미를 피워내지 못하고, 피펌벅의 벙어리가 되어 사라져 가는가.
* 안지영/ 문학평론가, 2013년 《문회일보》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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