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그 후/ 조수림

검지 정숙자 2015. 8. 31. 12:09

 

 

       그 후

 

      조수림

 

 

  남자가 길어졌다 뒤늦게 눈치챈 장례지도사가 남자의 무릎

꺾어 목관 안에 몸을 우겨 넣었다 무릎이 솟아올라 관 뚜

덮이지 않았다 뚜껑에 대못을 치려는지 무릎을 부수려

는지 망치를 집어 든 순간 서슬 시퍼런 큰아들이 멱살을 움

잡았다 새파랗게 수염을 민 둘째가 튀어 올라 옆구리에 일

을 가했다 넘어지려는 순간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막내가 예의

바르게 쌍욕을 한 방 날렸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다

 

  죽어서 자라는 몸 죽음 이후 거인이 되는 자가 있다 한평생 별

볼 일 없던 자들이 그랬다 응축된 분노가 사후경직 과정에서 일

으킨 빅뱅 뼈를 자라게 했다 거인을 본 것은 혼자만이 아니다 모

두들 죽은 남자의 모습에 압도되어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난생

음 아버지가 위대해 보였다고 큰아들이 울먹이며 말했다 관을

게 준비해온 장례지도사의 터무니없는 실수도 어쨌거나 내일

이면 모든 게 한줌의 재로 사그라질 것이니 모두가 참아 주기로

했다

 

 

   *『시인수첩』2015-가을호 <신작시>에서

  * 조수림/ 2010년『시와반시』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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