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서윤후_ 리바이벌/ 시인 연습 : 박남철

검지 정숙자 2015. 8. 28. 00:06

 

 

 『시사사』2015.3-4월<시사사 리바이벌/ 다시 읽어보는 오늘의 명시 명시집!!!_서윤후>에서 발췌

 

 

      시인 연습

 

      박남철

 

 

  나도 한때는 詩人이고자 했었노라. ㅎ ㅎ ㅎ

  굉장히 열심히 세수도 않고 다니고

  때묻은 바바리 코우트의 깃을 세워 올리면서

  봉두난발한 머리카락의 비듬을 자랑했거니,

  이미 내 등이 꺼꾸정하게 굽은 뒤에

  형사 콜롬보가 기막힌 포옴으로 수입되었었노라

  무엇인가 비웃는 듯한 미소를

  한시라도 지우지 않으려고 노력하면서

  먼 허공에서 아물거리는 하늘과,

  바람과 별과 詩만을 바라보는

  내 순수 고독의 시선하며

  그것을 담은 詩展 팜플렛을, 오호호

  저 무지 몽매한 중생들에게

  노나 주었었노라

 

  항상 국가와 민족의 앞날을

  걱정하면서, 우주와 평화를 걱정하면서

  尹東柱의 혈서를, 에즈라 파운드를

  옆구리에 끼고 다녔었노라

  어디 나도 한번 머엇있게 살아 볼려고

  오른손을 번쩍 번쩍 치켜 들면서

  인생이란 뭐 다 그런 거라고, 아무 때고 간에

  떠나고 싶을 때 훅 떠날 수 있는 거라고

  목에 힘 꽉 주어 엄격하게 단언하면서

  귀족처럼 우아하게 酒店 할미집을

  들락거렸었노라

 

  때로는

  끓어오르는 詩興을 가누지 못하여

  별로 인적이 뜸하지 않은 오솔길을

  홀로 사색에 잠겨 비틀거리곤 했었노라

  납작하니 짓밟힌 꽁초를 주워 피우면서

  李小龍이처럼 절묘한 비명을 질러댔었노라.

  아카! 아카카카!

 

  아아, 근데 누가 뭐 신경이나 좀 써 줘야지

  태산 明洞에서 서일필이더라, ㅍ ㅍ ㅍ

  좌우지간 나도 한때는 굉장히 열심히

  詩人이고자 했었노라

                                   - 전문 -  (지상의 인간』문학과지성, 1984)    

 

  

  이 시에서 흘러가고 있는 장면들은 대개, 시인이라고 했을 때 생각나는 어떤 관습적인 모습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것을 어설프게 흉내 내는 듯 보이는 화자는 구체적으로 장면들을 만들어 나간다. 시적(詩的)이라고 말할 수 있는 어떤 분위기나 풍경에서 우리는 황홀함을 마주하는 것 같지만 그 안에 내재된 어둠을 본다. 시인마다 그 순간을 마주하는 방식은 조금 다르겠으나, 시를 통해 드러나는 그의 방식은 굉장히 침울한 순간들을 껴안고 몸살을 앓듯 시를 써왔으리라 의심되지 않는다. 비장해보이지만 그 안에는 아무도 알아봐주지 않는 어떤 고독 속에 취하거나 사색에 비틀거리는 취객이 있고, 씻지도 않은 꾀죄죄한 모습에 낭만만으로 삶을 연체하고 있는 연체자만 있다. '시인은 왜 시인인가?"라는 질문으로 바꾸어 보았을 때 그는 시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에 있어 유별나게 의식하는 사람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식은 시인을 살게 만들 수도 있고, 죽게 내버려 둘 수도 있는 위험한 것이다. 감히, 그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는 면밀하게 알 수 없으나 의식이 없는 목숨처럼 시인이라는 삶에서 그가 목도한 것은 가짜들의 세상이 아니었을까. 적어도 시인이라면…… 이라고 말할 수 있는 관습에만 너무 연습을 하고 있는 다른 세상 속에서 그는 그런 상황들을 모르는 척 지나가지 않고 스스로를 깨부수며 자신의 의식으로 수렴하고 목소리를 목숨처럼 내놓는다. 내가 읽은 그의 시들은 대체로 그런 파편에서 오는 시, 이 시와 같이 노골적이고도 은밀하게 목소리를 내놓는 시, 뿐만 아니라 그렇지 않은 모든 시들까지 그가 나아가고자 했던 세계는 반드시 내놓아야만 하는 것이 있었다. (서윤후/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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