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수가 된 고구마 친구
허우범
친구가 고구마를 보내왔다
오래 전에 원수 사이가 된 줄도 모르고
봄날은 억지로라도 자라야 한다
생각의 흰 구름에도 마른버짐이 피던 그때
등굣길 고구마를 가져와서
속살 하얀 말로 내 유년을 둥실둥실 띄우던 친구
고구마는 이 세상에서 가장 친한 친구에게만 주는 거야
만약 어느 누구에게라도 고구마를 받았다고 말하면
우린 원수가 되는 거야
나는 떠나고, 친구는 남고
산다는 것이, 살아간다는 것이
결국은 어둠 속을 벗어나는 일인데
칼끝만큼이라도 틈만 있으면
햇살이 얼마나 무수히 쏟아져 내리던가
홀로 밤길을 걸으며 말했다
겨울비 등뼈 속으로 흐를 때
눈물을 감추려고 강을 보며 말했다
고구마를 준 친구가 있다
내게는 고구마를 준 친구가 있다
*『시에』2015-여름호 <시에 시>에서
* 허우범/ 충북 보은 출생, 2014년『리토피아』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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