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김완하_이 계절의 시인/ 얼굴 : 유자효

검지 정숙자 2015. 8. 25. 00:07

 

 

『시와정신』2015-봄호 <이 계절의 시인, 생 체험을 바탕으로 한 통찰의 언어_김완하>에서 발췌

 

 

      얼굴

 

      유자효

 

 

  "잠깐 서 있어 봐"

  외출하려는 나를 불러 세우는 아내

  "당신 얼굴이 생각이 안 나"

  한참을 가만히 뜯어보더니

  "됐어. 가 봐"

 

  오래 전에 돌아가신 장인의 얼굴도 또렷이 떠오른다는 아내

  유독 내 얼굴만 생각이 나지 않는다 한다

 

  하나가 되어 오히려 낯선

  저승보다 먼 지척

                         - 전문 -

 

 

  이 시는 아이러니를 동반하고 있다. 아내와의 일상을 통해서 생의 궁극적인 면을 표현하였다. 인디언들은 말을 타고 급하게 달리다가 한참을 달린 후에는 잠시 서 있다가 다시 말을 달린다고 한다. 그래서 뒤처진 영혼이 달려와 몸속으로 들어오도록 배려한다는 것이다. 이 일화는 그만큼 우리 생의 순간을 좀더 돌아보라는 의미일 터이다. 아침에 아내가 출근하려는 화자를 불러 세우는 일은 인디언들이 말을 달리다 정지하는 행동과 같은 것으로 읽혀진다.

  아내가 출근 전의 화자에게 잠시 서서 얼굴을 확인하도록 하는 것은 결국 화자에게 잠시 서서 생을 돌아보도록 하는 효과를 자아낸다. 그런 점에서 이 시는 현대인들의 삶에 경종을 울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제목으로 '얼굴'을 선택한 것은 현대인들은 모두 가면을 쓰고 살아가고 있다는 반성에 대한 의미일 수도 있을 것이다.

 

 

  *『시와정신』2015-봄호 <이 계절의 시인, 생 체험을 바탕으로 한 통찰의 언어_김완하>에서 발췌

  * 김완하/ 경기도 안성 출생, 1987년 『문학사상』으로 등단. 시집 『길은 바다에 닿는다『그리움 없인 저 별 내 가슴에 닿지 못한다』『네가 밟고 가는 바다』『허공이 키우는 나무』『절정』, 시와시학상 젊은 시인상 등 수상, 한남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고은문학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