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최종환_ 젊은 비평, 새로운 감성/ 돌멩이 : 이현승

검지 정숙자 2015. 8. 25. 02:20

 

  문학선』2015-봄호 <특집2-젊은 비평, 새로운 감성/ 거울 속에서 탄생하는 주체들 _ 최종환>에서 발췌

 

 

       돌멩이

 

       이현승

 

 

  화난 사람들은 돌멩이를 하나씩 들고 물가로 간다.

  돌멩이들은 부릅뜬 눈처럼 무섭다

  눈을 향해 날아들 때가 제일 무섭다

 

  머리 꼭대기 위에 오르는 아이들은

  징검다리 위를 통통통 건너뛰며 즐겁다

  눈썹까지 물에 잠긴 머리통들은 나몰라라 즐겁다

 

  손바닥에 돌멩이를 말아쥐고

  얇은 유리창 같은 수면을 노려본다

  와장창 깨졌다가도 금세 원래대로 회복된다

 

  수면 아래로 봉인되는 소리들 돌멩이들

  사라졌다 모이고 모였다 사라지는 물고기들

  밖에서 누군가 돌멩이를 들고 이쪽을 보고 있다.

                                                              - 전문 -

 

 

  이 시의 "화난 사람들"을 2000년대 일각의 젊은 시에 등장한 "아이들"이라 추측해 볼 수 있다면, 그 시절의 이현승 자신도 그 아이들 중 하나였을 것이다. 더우기 인용시의 수면이 2000년대 신자유주의의 지식을 우리에게 건넸었던 거울이라면, 지금 와 돌이켜보건대 어째서 "와장창 깨졌다가도 금세 원래대로 회복" 되었던 것인지 추측해 보는 것은 어렵지 않다. 인용 시에서 이현승은 이 추측을 좀 더 구체화하고 있다. 그는, '우리의 돌멩이가 수면에 파 놓은 것이 공백(lack)보다 여백(blank)은 아니었나?'라고 반문한다. "아이들"이 던진 "돌멩이"가 ―그들이 빠르게 성장하면서―― "바윗돌(Rock)*처럼 변하고, 즐겁던 저 돌 던지기의 부정성이 "나몰라라"식의 놀이로 변했기에, 그 전복의 "소리"들도 이내 수면 "아래로 봉인" 되지는 않은 것인가 라고 묻는 것이다. 어떤 면에서 이는 미학적 차원에서는 몰라도, 인식론적 차원에서만큼은 우리가 결국 저 거울 속 수심의 절대 심연에 도달할 수 없을 거라는 불길함을 드리우는 예감으로 이어진다. 2000년대 젊은 시들이 알았으되 믿으려 까지는 안 했던 질문을, 이현승은 『친애하는 사물들』에서 조심스레 꺼내고 있는 것이다 .

 

  * <주디 버틀러, 『의미를 재현하는 육체』김윤상 옮긺, 인간사랑_2003, 37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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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선』2015-봄호 <특집2-젊은 비평, 새로운 감성/ 거울 속에서 탄생하는 주체들 _ 최종환>에서 발췌

* 최종환/ 2015년 《문화일보》신춘문예로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