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긴 여름/ 강서완

검지 정숙자 2015. 8. 24. 23:10

 

 

      긴 여름

 

      강서완

 

 

  자음을 잃은 소녀야

  네 날개에 태양의 지문을 찍자

 

  꽃을 밀어 봐

  별을 불러 봐

 

  냉기로 붙박인 별과 별과… 별의 거리

  차량을 세워 구걸하는 소녀야

 

  불타버린 아버지 어머니

  흰 별의 값을 삼촌이 탕진했구나

  수년 발길질에 터진 머리

  온몸엔 상처

  맨발의 열쇠는 이마에 끓고

  눈동자엔 멍한 거미줄

 

  여름은 신발을 벗고

  봄은 지하에 갇힌 지 오래

  파르마콘을 쥔 화단에

  칸나는 알이 굵어지는데

 

  자음을 찾는 소녀야

  솟아오르는 흰 새를 보았니?

 

  틈을 벌려 봐

  벽을 밀어 봐

 

  여름은 속도가 아니라 사무친 신념이란다 

 

 

  *『시와정신』2015-봄호 <신작시>에서

  * 강서완/ 경기 안성 출생, 2008년 『애지』로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