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표현』2015-8월호
<기획특집_ 쓰고 싶은 시> 새로운 적자들의 탄생 : 박해람
도그빌
구현우
꿈에서 주운 개를 꿈 밖에서 키운다. 내가 먹는 밥을 먹인
다. 내가 아는 곳으로 데려간다.
발코니로 간 나의 개는 밑에서 올라오는 담배연기를 태연
히 빨아들인다.
그게 발코니의 냄새인 줄 안다.
한강으로 간 나의 개는 낯선 두 아이가 공 하나로 웃고 우
는 장면을 지켜본다.
그게 가족인 줄 안다.
세탁소로 간 나의 개는 모피코트를 벗어놓고 나온 여자를
따라간다.
그게 마음인 줄 안다.
현관 앞에 멈춘
나의 개는
문을 열어두어도 안에서 불러봐도 꼼짝없이 앉아 있다
주인과
타인이
그게 그건 줄 안다.
언제 어딘가로 사라졌는데, 나는
나의 개가 있었다는 것마저 잊어버린다.
이전인지 이후인지 모르지만
꿈에서 만난 개를 꿈에서 방치한다. 오줌을 뿌리며 따라오
는 소리가 아직 뜻이 없는 낱말처럼 들린다.
꿈 밖에서 나는 혼자 이인분의 요리를 먹는다.
익숙하고도 익숙해지지 않는 도시를 걷다가
나의 개를 닮은 개와
나의 개를 하나도 안 닮은 개와
개도 아닌데 개로 불리는 남녀노소가
어디에나 있는 것을 본다.
도시는 한꺼번에 어두어지고
내가 없는데 내 방에 불이 들어온다.
-전문-
서사적 구조 아래 현실의 화자를 등장시키던 방식은 이제 고전이 되어버렸다. 타자들의 끊임없는 중얼거림은 마치 유령들의 노래를 듣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렇지만 적어도 시를 쓰는 젊은 시인들을 유령의 범주에 넣어도 무방하리만큼 현실은 어둡다. 적어도 그들의 현실적 세계에서는 분열된 화자의 출현이 그리 놀랍지도 않다는 것이다, 나와 개와 그리고 내가 마음인 줄 아는 현상들 속에 웅크리고 있는 내 방에 들어오는 불빛이, 그 사소한 치환(置換)이 오히려 시의 중심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옳다 그르다의 범주는 더 이상 시의 덕목이 아니다. 우울한 유령과 싸우기보다는 유령을 화자로 삼는 방식은 흔한 메타포가 되었다는 뜻이다. 감정을 분산시키고 분산된 관람을 통해 화자인 듯 타자인 듯 상황을 중계하듯 말이다.
현상은 쏟아지고 쌓이면서 구축된다. 그것이 밀도가 있건 없건 그건 쌓이는 현상과는 상관없다. 일단 쌓이고 나면 분석되고 분석되면서 하나의 이즘(these days)이 된다. 이러한 지경에 이르면 찬반이 나뉘고 격렬해진다.
* 박해람: 1998년『문학사상』으로 등단. 시집『낡은 침대의 배후가 되어가는 사내』『백 리를 기다리는 말』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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