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어느 아빠의 하루/ 이보숙

검지 정숙자 2015. 8. 9. 22:56

 

 

      어느 아빠의 하루

 

       이보숙

 

 

  세 살배기 딸을 등에 업고 사십 대의 그 남자는 배달 일을 한다

  공장에 가려 해도 아이가 떨어지질 않는다

  풀빵 장사를 나가려 해도 자본이 없다

 

  엄동설한인데 아빠는 헬멧을 쓰고

  아이도 털모자 위에 노란 헬멧을 씌우고

  포대기로 아이를 등에 업고

  오토바이를 타고 나간다

  슈퍼에서 물건을 사고 시장에서 야채, 생선, 두부를 사서

  배달을 나간다 한 건당 오천 원,

  경로당에 배달이 생기면 거기서

  아이 기저귀를 갈아준다

  아이는 오토바이 모는 아빠 등에서 잘도  잔다

  그 남자는 거친 산비탈에 심겨진 소나무,

  아이의 두 발은 소나무 밑에 자라난 버섯 같다

  어느 누가 예수처럼 산비탈의 소나무를

  청정지역으로 옮겨줄 수 있단 말인가,

 

  오늘은 꼭 갈 데가 있다

  노란 종이꽃을 달고 있는 액자 속에서

  웃고 있는 아이 엄마,

  사고 내지 않고 잘 기르겠다고 맹세할 때

  사나이 볼을 타고 굵은 눈물이 마구 흐른다

  등 뒤의 아이는 참 조용하다

 

 

   *『시와표현』2015-8월호 <신작시 광장> 에서

   * 이보숙/ 2000년 시집『새들이 사는 세상』으로 작품활동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