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정푸른 시인이 선정한 시, 리뷰/ 서안나 : 백 톤의 질문

검지 정숙자 2015. 8. 2. 01:57

 

 

    『시와경계』2015-봄호, 정푸른 시인이 선정한 <지난 계절의 시 리뷰>에서

 

 

 

    백 톤의 질문

 

    서안나

 

 

  뒤돌아보면

  가을이었다

  소주가 달았다

  내가 버린 구름들

  생강나무 꽃처럼 눈이 매웠다

 

  고백이란 나와 부딪히는 것

  심장 근처에 불이 켜질 때

  그렇게 인간의 저녁이 온다

 

  불탄 씨앗 같은 나를 흙 속에 파묻던 밤

  죄 많은 손을 씻으면

  거품 속으로 사라지는 두 손은 슬프다

  어떤 생(生)은 어떤  눈빛으로

  커튼을 닫고 밥을 먹고 슬픔을 물리치나

 

  깨진 중국 인형의 눈동자 속에서

  울고 싶은 자들이 운다

  죽은 꽃이 죽은 꽃을 밀고 나오는

  부딪치는 밤이었다

 

 

  돌아누우면

  물결이던

  애월

                            -『유심』2015년 1월호

 

 

  * 질문은 우리의 실핏줄이다. 의문형의 문장 부호 속에 흐르는 우리의 생각, 느낌, 혹은 후회 그 모든 것들이 뒤섞인 혈액이 우리의 삶을 돌고 도는 것이다. 우리는 실제로 타인에게보다 자신에게 더 많은 질문을 던진다. 묵음으로 처리된 수많은 시간 속에 눌러 담은 그 많은 질문이 우리 삶의 무게다. 질문이야말로 일정하게 흘러가고 있는 시간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자신만의 특별한 공정인 것이다. 사람들의 시간은 각기 다른 모습으로 흘러간다. 시간의 방향을 틀고 무늬를 넣고, 혹은 에둘러 가게 하는 그 모든 순간에 질문이 있다. 왜? 무엇이? 어떻게? 어디에? 누가? 이렇게 축약된 다섯 개의 질문 속에 설명되지 않는 시간은 없다. 우리의 삶은 질문과 질문의 연속 선상에 있는 것이다. 이 시의 화자도 질문 속에서 답 대신 또 다른 질문을 찾고 있다.

  "뒤돌아보면/ 가을이었다/ 소주가 달았다" 이 구절 속에 담겨 있는 단어들은 다 같은 색깔이다. 사람의 얼굴에 표정이 있는 것처럼 단어들도 표정이 있다. 연속해서 등장하는 세 단어 '돌아보면' '가을' '소주'는 한 사람의 이목구비처럼 한 가지 표정을 향해서 기울어지고 흔들리면서 우리들의 가슴에 와 닿는다. 항아리처럼 질문을 끌어안은 채 서서히 발효되고 있는 것이다. 화자에게 질문은 '고백'과 같은 것이다. "고백이란 나와 부딪치는 것/ 심장 근처에 불이 켜질 때/ 그렇게 인간의 저녁이 온다"라는 구절에서 화자는 질문과 마주하고 있다. 자신의 가슴을 후벼파는 질문이야말로 인간이 맞이하는 가장 어둡고 차가운 저녁이다. 물리적인 시간의 흐름과 상관없이 찾아오는 우리 삶의 어둠이 바로 "인간의 저녁"이 아닐까. 우리의 힘으로 쉽게 벗어날 수 없는 어둡고 습한 저녁. 우리를 잠들지 못하고 뒤척이게 하는, 자신의 허물을 손가락으로 헤아리게 하는 질문들의 저녁….

  "깨진 중국 인형의 눈동자 속에서/ 울고 싶은 자들이 운다/ 죽은 꽃들이 죽은 꽃을 밀고 나오는/ 부딪치는 밤이었다"라는 구절 속에는 집요하게 파고들었던 질문이 우리에게 주는 카타르시스가 들어있다. 우리는 매번 질문에 대해서 정답을 찾지는 못하지만 질문을 끌어안고 뒤척였던 그 시간만으로도 치유되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을 얻는다. "죽은 꽃"이야말로 질문의 또 다른 모습이 아닐까. 질문이 질문을 밀고 올라오는 우리의 시간. 끝없이 물결이 밀려오는 애월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백 톤의 질문'이 밀려오는 우리 삶을 화자는 애월에서 보고 있는 것이다. 

 

 

   * 정푸른/ 진주 출생, 2008『미네르바』로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