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굴의 역사(歷史)
김효선
꽃이 다녀갔다. 저 문장을 쓰면 동굴이 몸 안으로 들어온다.
시월의 모든 길은 당신에게로 뻗어 있다. 한 사람은 울고, 한 사람은 얼
룩이 되었다. 고등어의 눈은 붉고, 순록의 피는 희다. 붉은 것과 흰 것의
뒤편, 발을 뻗으면 웃음은 한 평도 되지 않았다.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서
밤을 보냈다. 새벽은 퍽 친절하게 창문 하나를 내어 주었다. 새벽을 넘어
자연스럽게 흘러가 닿는 것은 이별이다. 끊을 수 없는 곡기처럼 다녀가신
당신, 절대로 좁혀지지 않는 섬과 섬 사이, 종종 등 푸른 바람은 비리고,
흰 구름은 절반의 진실만 흘려보냈다. 발을 뻗으면 어둠의 뒤편, 허공에
새겨 넣은 그림자가 만져진다.
*『시와경계』2015-봄호 <신작시> 에서
* 김효선/ 제주도 모슬포 출생, 2004년『리토피아』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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