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필경사 바틀비/ 금은돌

검지 정숙자 2015. 8. 1. 20:50

 

 

      필경사 바틀비^

 

       금은돌

 

 

  적(敵)을 한 마리를 키우고 있지. 적이 되는 순간, 그 놈들

은 몸에 들어와 살림을 차리지. 갈비뼈쯤인가 엉치뼈쯤인가,

먹이를 내어달라고 짖어대지. 세입자 주제에 붙박이 장롱과

오븐까지 교체해 달라하지.

 

  그 놈이 들여놓은 아날로그 턴테이블 뚜껑엔 먼지가 내려

앉지. 칠판에 분필 긁는 소리, 고라니 침 뱉는 소리, 달밤에

개 짖는 소리, 피가 뚝뚝 떨어지는 고기를 던져주어도 치직

거림은 여전하지.

 

  적은 쉬는 법이 없다네. 집에 더 큰 구멍을 내고 수챗구멍

을 파지. 멍을 파지. 파지. 파지. 지독하게 파지를 만들지. 기

둥을 갉아먹고 대들보를 씹어 삼키지. 그 녀석이 씹어 삼키

기 좋은 마블링을 찾기 위해 피 흘리는 나의 문장을 알기나

할까 몰라.

 

  밤잠을 재우지 않고 필름을 돌리는 공짜 영화관. 뒤늦게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는 스크린을 향해 혼잣말을 하지.

감독에게 편집당한 공염불, 상처 입장 차이 분노. 턴테이블

위에 쌓인 먼지를 내가 닦아 준다네.

 

  받은 돈도 없이 전세금을 내놓지 못한 신세라네. 또 다른

녀석이 전입신고를 해 왔는데 은퇴를 모르는 끈질긴 주인공

들. 그리하여 적적하지 않게 떠돌아다니지. 진짜 내 집은 어

디 있나 몰라.

 

  (^ 하먼 멜빌의 소설 제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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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시학』2015-8월호 <신작시> 에서

  * 금은돌/ 2013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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