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너와 나의 체온조절법/ 정채원

검지 정숙자 2015. 7. 23. 00:04

 

 

      너와 나의 체온조절법

 

       정채원

 

 

  내 피를 얼려 만든 네가

  나를 보자 반갑게 손을 내민다

  검붉은 눈과 코와 이마

  입을 벌릴 때마다 하얀 안개가 피어오른다

 

  말과 말을 포개면

  핏물이 흥건하고

  포옹을 풀고 나면

  셔츠는 피로 얼룩지겠지

 

  뭉툭해지는 너의 얼굴 옆선을 더 깎아

  칼날을 세운다

  이마에서 흐르는 피땀은

  저녁놀을 반사하지 않고

  잠잠히 저물어갈 뿐

 

  예고 없이 플러그가 뽑히는 날

  함께 먹다 쏟은 팥빙수 한 그릇처럼

  검붉게 바닥으로 스미고야 말겠지만

 

  처음엔 불로

  나중엔 얼음으로

  망할지라도

 

  늘 일정한 거리

  일정한 온도에서 얼어붙은 채

  서로를 바라보기만 할 것

  한동안 잡고 놓지 못하던 손,

  손등만 남았다

 

 

   *『시사사』2015.7-8월호 <신작특집>에서

   * 정채원/ 1996년 『문학사상』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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