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부제
하린
이혼을 했다
오늘부터 토막이다
상하기 전에 투명 봉지에 넣고 밀봉해줘
태연하게 웃으며 싱싱한 척을 했다
3일 내내 비린내가 진동했고
일요일엔 패배자를 위로하기 위해 전도사들이 왔다
제기랄, 혼자 해도 될 기도를 두 손 꼬옥 부여잡고 했다
냉장고엔 유통기한을, 기름통엔 조절능력을 채워 넣으며
신은 절대 이혼 같은 건 안 한다고 주절거렸다
저녁엔 불순물처럼 놓여져 독주를 마셨다
참고 또 참는 방부제가 되고 싶은데
더 이상 썩어들어 갈 비참은 없을 거야, 확신했는데
토막 난 곳에선 피가 한 방울도 나지 않았다
비밀번호가 종교가 될 수 없다는 걸
바뀐 비밀번호에 익숙해지면서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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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세기 詩人』2015-mook/ <삼색 노래>에서
* 하린/ 2008년『시인세계』로 등단. 시집『야구공을 던지는 몇 가지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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