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방부제/ 하린

검지 정숙자 2015. 7. 9. 22:28

 

 

      방부제

 

       하린

 

 

  이혼을 했다

 

  오늘부터 토막이다

 

  상하기 전에 투명 봉지에 넣고 밀봉해줘

 

  태연하게 웃으며 싱싱한 척을 했다

 

  3일 내내 비린내가 진동했고

 

  일요일엔 패배자를 위로하기 위해 전도사들이 왔다

 

  제기랄, 혼자 해도 될 기도를 두 손 꼬옥 부여잡고 했다

 

  냉장고엔 유통기한을, 기름통엔 조절능력을 채워 넣으며

 

  신은 절대 이혼 같은 건 안 한다고 주절거렸다

 

  저녁엔 불순물처럼 놓여져 독주를 마셨다

 

  참고 또 참는 방부제가 되고 싶은데

 

  더 이상 썩어들어 갈 비참은 없을 거야, 확신했는데

 

  토막 난 곳에선 피가 한 방울도 나지 않았다

 

  비밀번호가 종교가 될 수 없다는 걸

 

  바뀐 비밀번호에 익숙해지면서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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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세기 詩人』2015-mook/ <삼색 노래>에서

  *  하린/ 2008년『시인세계』로 등단. 시집『야구공을 던지는 몇 가지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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