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敵)
나혜경
한 사람 나가자 한 사람 들어온다
한 사람 목소리가 들리면 한 사람 방문 열지 않고
목소리가 사라지기를 기다린다
식탁에 같이 앉는 일 없이 후루룩 먹는 소리 사라지면
다시 쩝쩝 먹는 소리 시작된다
공기처럼 투명하니 서로 볼 수 없다
한 채씩 마련한 이불을 접었다 펴면 저무는 하루
시간이 지날수록 만질 수 없는 경계가 높다
각자의 우물이 깊어진다
경계와 우물을 바라보며 아이는 어른이 되었다
마음의 날을 섬뜩하게 키울 뿐
둘은 서로의 견고한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다
자신의 날에 자신이 베어 아플 뿐
둘을 함해야 하나의 지도가 완성되는데
허리 잘려나간 지 오래
무엇이 두려운지
두 사람은 한 곳에 적(籍)을 두고 있다
* 『김제문학』2015-제 21호, 15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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