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웃는 돌/ 감태준

검지 정숙자 2015. 6. 20. 00:32

 

 

      웃는 돌

 

      감태준

 

 

  돌덩어리도 자주 만나면 아는 척하고

  싱긋 웃는다

 

  아파트 모퉁이 뜰

  난간 없는 정자 옆에

  목련나무와 그보다 갑절 키 큰 느티나무 사이 잔디밭에

  쪼그리고 앉은 유치원생만한 돌 하나,

  이사 와서 처음 만난 가을에는

  까만 반점 많고 생김새 뭉툭한 화강석이었던 것이

  목련 두 번 지고 여름이 오는 동안

  표정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몸 전체가 얼굴이었다

  자세히 보면 주름살 없이 훤한 이마

  그 아래 크기 비슷한 두 반점을 눈으로 치고

  그 아래 가로 세로 검은 점들

  코와 입으로 쳐서 모자라지 않는 얼굴

  눈 마주치면 슬쩍 아는 척하기 시작했다

 

  그의 몸에서 내 멋대로 사람 얼굴 꺼내듯이

  그도 내 몸에서 화강석 얼굴 찾았겠지

  처음 만난 해 겨울

  장갑 낀 손으로 머리에 쌓인 눈 쓸어주고

  산책길 오며가며 유심히 눈길 주던

  생각할수록 살가웠겠지?

 

  정자에 걸터앉아 보고 있으니

  그도 고개를 틀어 물끄러미 쳐다본다

  어제 그랬던 것처럼

  저만치 가면 뒤에서 또 손 흔들려다 말고

  싱긋 웃겠지?  

 

 

         *『계절문학』/ 2015-여름호 <이 계절의 특선>에서

         *  감태준/ 1972년 『월간문학』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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