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
채수옥
빨간 테두리를 따라 걷는다
걷고 걸어도 테두리를 벗어나지는 못했다
멍든 주먹에서 시작된 둘레는 질문처럼 길고 지루했다
흰 꽃이었던 시간들이 생각나지 않는다
하루쯤 전력으로 뛰어가는
하루살이의 빨간 테두리는 측은한 것인가 숭고한 것인가
온 몸의 피가 쏠리도록
매달려 살았던 허공을 놓아버리기로 한다
과즙이 되기보다 썩는 것이 빨랐으므로 벌레를 초대했다
똑같은 계절과 인면수심을 견디며 긴 낮잠을 반복했다
머리속으로 칼날이 박힌다
반쪽으로 쪼개지는 두개골 속에
나의 가장 달콤한 죽음이 들어있다 무덤을 덮는 사람이 불었다
칼을 예감하며
칼날과 맞서는 생(生)들이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빨간 테두리 밖을 걷고 있다
* 『시와정신』2015-여름호 <신작시>에서
* 채수옥/ 2002년『실천문학』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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