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암수 두 마리 뱀이/ 한성례

검지 정숙자 2015. 5. 28. 16:29

 

 

    암수 두 마리 뱀이

 

      한성례

 

 

  서로 꼬리를 먹어간다

  해가 설핏 기울었다

  뇌간*이 반대로 움직이는 시간이다

  본능의 밑바닥에 남은 감각만으로

  무의식의 빗장이 풀린 채

  서로에 취해 질금질금 꼬리부터 먹어간다

  양쪽이 똑같은 속도로 줄어든다

  길이가 줄어들수록 순환의 고리가 더욱 단단해진다

  상징을 먹고 관념을 먹고 포만감을 먹는다

  뱀 두 마리의 길이가 줄어들어 무한히 줄어들어

  점점 둥글어진다

  새빨간 피를 서로 빨아들여

  커다란 원 하나로 완성된다

  영원히 서로의 몸을 먹어가는 뱀 두 마리

  붉은 해가

  지금 막 바다에 풍덩 빠졌다

                                          

 

  * 뇌간(腦幹) : 뇌와 척수를 연결하는 부위이며, 모든 신경이 이곳을 통과한다

 

  -----------------

  * 『시사사』2015. 5-6월호 <시사사 포커스_한성례 신작시>에서

  *  한성례/ 1986년『시와의식』으로 등단

 

'잡지에서 읽은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이로니컬한/ 김점미  (0) 2015.05.30
김봉춘나자로/ 유희선  (0) 2015.05.28
히키코모리 2/ 김명서  (0) 2015.05.23
겨울의 체적/ 최해돈  (0) 2015.05.15
사람의 바다/ 이경  (0) 2015.05.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