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키코모리 2
김명서
1.
기록되지 않은 비밀은 밤에 완성된다
몇 달 동안
심하게 눈병을 앓은 적 있었다
선무당은 악귀 때문이라고
인형의 눈에 바늘을 꽂고 길가 나뭇가지에 올려놓았다
나의 영혼은 최초의 슬픔을 방사했다
그날부터
우리 집은 문단속을 잘하는 습관을 길렀다
2.
눈 먼 인형
노쇠한 내 잠을 열고 밤새워 운다
잠자리가 조각조각 부서진다
잠속에 낚싯대를 던져 인형을 꺼낸다
바늘을 뽑아주고
나쁜 기억을 지운다
그 자리에 두 개의 달이 뜬다
불길한 징조가 아닌지,
기억 중간중간 연상법을 써서 명랑한 말을 떠올리게 한다
말꼬리에 생기가 돌다가
금세 산만해진다 그리고
3.
기억의 간절기에서
음수율이 모자란 점자(點字)들이 튀어나와
어설픈 문장을 조립한다
단음절들이 난폭하게 반응한다
자고나면
머리카락이 한 줌씩 빠져 있었다
인형의 손에 내 샴푸 냄새가 묻어 있다
참다못해 내 손이 인형의 목을 접수한다
4.
지하실에 인형을 묻고 꽃을 심는다
성장촉진제도 뿌린다
벽에 강력한 방향제를 붙인다 전혀 흥미를 못 느끼는지
시취(屍臭)를 덮어주지 않는다
반려견이 지하실을 긁는다
살인즐겨찾기와 접속한다
완전범죄를 하려던 머리가 더 파괴적이어야 한다고 조언을 아끼
지 않는다
기술을 습득하고 인형을 고른다
무작위로 밤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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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사』2015. 5-6월호/ 신작특집에서
* 김명서/ 2002년『시사사』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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