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춘나자로
유희선
나자로 이름은 김봉춘이었다
길 건너 약국 앞에서 종일 쪼그려 앉아 있던 나자로가
성당 휴게실에 앉아 김봉춘김봉춘김봉춘김봉춘
칸칸마다 빼곡하게 쓰고 있다
한 줄 길게 늘어선 김봉춘이
봄바람에 버들가지 휘어지듯 설렁설렁 춤추고 있다
한 바닥 가득 내려앉은 나비도 자랑스럽게 펼쳐보인다
일제히 접었다 펴는 무수한 날개들
날아가는 나비 한 마리를 콕 짚어 보이니
뒤통수를 긁적거리며 몸을 비비 튼다
말 같은 건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는 듯
온몸으로 붉게 웃는 나자로
작은 몸집에 반바지차림으로 훌쩍 사십인지 오십인지
학교도 장가도 다 건너뛰고
이빨 두세 개쯤은 아무렇지 않게 듬성해진 나자로가
빈 칸 없이 공책을 채우고 있다
고개를 처박고 까맣게 베껴 써 봐도
하얗게 처음인 사람, 김봉춘
어디 꼭꼭 숨었다 나타난 것일까
영문도 모르고 칸칸이 붙잡혀 버둥거리고 있다
어느새 꼭 잡은 손을 뿌리치고
쭈르르 내빼는 김봉추김봉추김봉추김봉추
저녁종소리 울릴 때까지 바람 불던
나자로의 가을 공책
발목이 시큰거리는 가랑잎들
누가 그의 머리를 자꾸 쓰다듬는가
무성한 가로수 이파리에 여름내 깜깜하게 가려졌던 예수상이
설핏 모습을 드러냈다 사라진다
* 『시사사』2015. 5-6월호 <시사사포커스_유희선/ 근작발표시>에서
* 유희선/ 2011년『시사사』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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