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 머리를 흔들어봐!
고은산
뭉텅뭉텅 아픈 생각, 가느다랗게 촉수를 뻗치며, 굽이치는 달빛의 꽁무니를 따라 깊은 시골의 고샅길을 걷는, 기억을 쫓아봐 어둠의 홰 위에서 날갯죽지 퍼덕이며, 밤에 흉터를 내는 수탉의 발톱에 낀 흙먼지 같은, 삐죽삐죽 돋아난 두개골의 편린들 쫓아봐, 그리고, 잠깐, 머리를 흔들어봐! 만약, 생각이 바뀌어 은빛 비늘이 우수수 떨어지고, 달빛 묻은 바닥엔 은빛 비늘이 흥건하게 쌓이면, 부스럭거리는 도시에 쌓인 오색휴지처럼, 그리고, 오색휴지를 금빛 휴지통에 담아두듯 된다면, 그것은 닳은 신발 뒤축을 금장으로 수선하는 거야 환한 꽃잎이 난분분한 거야 밤하늘을 푸른 지느러미 흔드는 청어 떼로 가득하게 만드는 거지.
*시집『말이 은도금되다』에서/ 2010.8.15 <리토피아>발행
*고은산/ 전북 정읍 출생, 2010년『리토피아』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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