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앵두나무/ 박정수

검지 정숙자 2010. 12. 17. 03:16

 

 

    앵두나무


     박정수



  마을 초입 우물 하나 있었다, 그 우물 영월댁 셋째딸이 뛰어든 이후 흔적마저 사라졌다 한낮 마을은 콩밭으로 옮겨진 듯 비워지고 붉음은 가지 끝까지 오르다가 숨겨진 기억을 내뱉듯 온몸이 가팔라졌다 열아홉 처녀의 짝사랑이 숨어 있기 좋은 곳이다 어쩌면 우물의 밑바닥까지 뿌리가 내린 것일까 앵두나무는 자신의 최후를 유월에 둔 듯, 해마다 붉게 앵돌아졌고 장마 전선이 마을로 들어올라치면 온 동네를 들쥐처럼 뒤적이는 영월댁의 걸죽한 사투리가 흐릿한 눈빛으로 맴돌기 일쑤였다 가슴에 묻힌 무덤 하나 앵두나무로 자라는지 그녀의 몸속 혈류는 그녀를 아는지 모르는지 앵두는 붉어졌다


  마을 초입 우물이 있었다 앵두나무보다 훨씬 오래 전

 

 

  *시집『봄의 절반』에서/ 2010.11.25 (주)천년의시작 펴냄

  *박정수/ 경북 칠곡 출생, 2008년『시작』으로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