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시월, 화요일/ 박정수

검지 정숙자 2010. 12. 17. 03:10

 

   시월, 화요일


     박정수



  하늘이 너무 높아 미장원에 갔었지

  결코 푸르게 염색하려는 의도가 아니었어


  북쪽으로 문이 난 가게는

  오후 세 시에 이미 햇살을 잘라내고

  흰 벽의 거울만 환했지

  중년의 수다를 말아올린 듯 김 오르는 세상처럼 곱실거렸지

  막 풀려나간 파마롯드엔 한 여자의 체온이

  스멀스멀 흩어지고 있었지

  모처럼의 외출인 듯

  여자의 빨간 루즈

  환한 거울 속을 기어오르고 있었지


  가게가 축소된 거울 속 표정 없는 손놀림만

  여자들 등 뒤에서 혼자 분주하지

  늘 그 자리에 꽂히는 드라이기처럼

  줄곧 이 불쪽 그늘에 살고 있었던 것이지

  비가 내리는 날에도

  하늘이 끝없이 높은 오늘 같은 날에도 그녀는

  손가락에 잘 맞는 가위 하나로 햇살을 잘라내고 있었던 거지


  나른한 은행나무와 젊은 은행나무

  막 염색을 시작하려는지 미장원 유리창을 노크하고 있었지

 


  *시집『봄의 절반』에서/ 2010.11.25 (주)천년의시작 펴냄

  *박정수/ 경북 칠곡 출생, 2008년『시작』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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