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월, 화요일
박정수
하늘이 너무 높아 미장원에 갔었지
결코 푸르게 염색하려는 의도가 아니었어
북쪽으로 문이 난 가게는
오후 세 시에 이미 햇살을 잘라내고
흰 벽의 거울만 환했지
중년의 수다를 말아올린 듯 김 오르는 세상처럼 곱실거렸지
막 풀려나간 파마롯드엔 한 여자의 체온이
스멀스멀 흩어지고 있었지
모처럼의 외출인 듯
여자의 빨간 루즈
환한 거울 속을 기어오르고 있었지
가게가 축소된 거울 속 표정 없는 손놀림만
여자들 등 뒤에서 혼자 분주하지
늘 그 자리에 꽂히는 드라이기처럼
줄곧 이 불쪽 그늘에 살고 있었던 것이지
비가 내리는 날에도
하늘이 끝없이 높은 오늘 같은 날에도 그녀는
손가락에 잘 맞는 가위 하나로 햇살을 잘라내고 있었던 거지
나른한 은행나무와 젊은 은행나무
막 염색을 시작하려는지 미장원 유리창을 노크하고 있었지
*시집『봄의 절반』에서/ 2010.11.25 (주)천년의시작 펴냄
*박정수/ 경북 칠곡 출생, 2008년『시작』으로 등단
'시집에서 읽은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너바나(nirvana)의 길/ 김영찬 (0) | 2010.12.18 |
---|---|
앵두나무/ 박정수 (0) | 2010.12.17 |
잠깐, 머리를 흔들어봐! / 고은산 (0) | 2010.12.09 |
벚꽃축제/ 고은산 (0) | 2010.12.09 |
합창단/ 김행숙 (0) | 2010.12.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