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벚꽃축제/ 고은산

검지 정숙자 2010. 12. 9. 01:59

 

 

     벚꽃축제


     고은산



   군중 속 엿가위 허공을 싹둑싹둑 자른다.

   부딪는 소리는 웅성거림 속 높은 음계로 휘젓는다.

   귓바퀴에 에도는 난장의 음파가 시골 벚꽃축제 장터

   머리 위 까치발로 높이 서 있다.

   길 옆 좁은 구석에 자리 잡은 한 사내, 어두운 듯 전선을

 달아

   부지런히 움직인다.

   방금 핀 벚꽃, 흥이 오르자

   품바타령에 맞춰 엿가락 자른다.

   사각 엿판 위 막대기에 달려 있는 전구의 달팽이관은

   품바타령 연신 듣고 있다.

   전구 속 텅스텐은 빛을 발하며 가로수 밑을 슬쩍슬쩍 훔친다.

   술에 취한 노랫가락 붉게 퍼지며

   누더기에, 벙거지 쓴 사내는 서늘한 어스름의 머릿결 빗는

 다.

   취기는 어둠에 어둠은 불빛에 비틀거리고

   품바는 혓바늘 돋는 손아귀로 엿가위 흔든다.

   사람들이 사라진 장터,

   어둠이 벚꽃에 앉는다.

   점점이 뜬 별이 박히고 가위소리 숨을 멈춘다.

   벚꽃축제, 빈 의자 위 찬 바람이 척추를 꺾고 앉아 쉬며

   꼬나문 담배 한 대, 품바의 하루가 타고 있다.


   *시집『말이 은도금되다』에서/ 2010.8.15 <리토피아>발행

   *고은산/ 전북 정읍 출생, 2010년『리토피아』로 등단

'시집에서 읽은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월, 화요일/ 박정수  (0) 2010.12.17
잠깐, 머리를 흔들어봐! / 고은산   (0) 2010.12.09
합창단/ 김행숙  (0) 2010.12.04
1년 후에/ 김행숙  (0) 2010.12.04
철원에서/ 신원철  (0) 2010.12.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