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청춘/ 최문자

검지 정숙자 2015. 4. 5. 20:12

 

 

     청춘

 

     최문자

 

 

  파랗게 쓰지 못해도 나는 늘 안녕하다

  안녕 직전까지 달콤하게 여전히 눈과 귀가 돋아나고 누

군가를 오래오래 사랑한

  시인으로 안녕하다

  이것 저것 다 지나간 재투성이 언어도 안녕하다

 

  삼각지에서 6호선 갈아타고 고대병원 가는 길

  옆자리 청년은 보르헤스의 『모래의 책』을 읽고 있었다

  눈을 감아도 청년이 파랗게 보였다

  연두넝쿨처럼 홀쩍 웃자란 청춘

  우린 나란히 앉았지만 피아노 하얀 건반 두 옥타브나

건너 뛴다

  난삽한 청춘의 형식이 싸락눈처럼 펄럭이며 나를 지나

가는 중이다

 

  안녕 속은 하얗다

  난 가만히 있는데

  다들 모르겠지

 

  한 부분에 정신 없이 늘어나는 눈물

  구르지 않고 사는 혀

  아무도 엿보지 않는데

  그렇게나 많이 나를 증명할 필요가 있나

 

  가방 속에 읽다 만 들뢰즈의 <천의 고원>을 꺼내 나도

읽고 싶었지만

  그냥 있었다

  모두들 나를 두고 그냥 내렸다

  청년도 나를 잊고 그냥 내렸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설마, 하던 청춘이 일어나서 나를 열고 그냥 나갔다

  고대 앞에서 들뢰즈를 들고 내릴 때

  사람들이 하얀색으로 흔들리는 내 등을 보고 있었다

 

 

  * 『시향』2015-봄호 <지난 계절의 詩 다시 보기>에서

  *  최문자 : 1982년 등단 / 게재지 : 시인수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