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
최문자
파랗게 쓰지 못해도 나는 늘 안녕하다
안녕 직전까지 달콤하게 여전히 눈과 귀가 돋아나고 누
군가를 오래오래 사랑한
시인으로 안녕하다
이것 저것 다 지나간 재투성이 언어도 안녕하다
삼각지에서 6호선 갈아타고 고대병원 가는 길
옆자리 청년은 보르헤스의 『모래의 책』을 읽고 있었다
눈을 감아도 청년이 파랗게 보였다
연두넝쿨처럼 홀쩍 웃자란 청춘
우린 나란히 앉았지만 피아노 하얀 건반 두 옥타브나
건너 뛴다
난삽한 청춘의 형식이 싸락눈처럼 펄럭이며 나를 지나
가는 중이다
안녕 속은 하얗다
난 가만히 있는데
다들 모르겠지
한 부분에 정신 없이 늘어나는 눈물
구르지 않고 사는 혀
아무도 엿보지 않는데
그렇게나 많이 나를 증명할 필요가 있나
가방 속에 읽다 만 들뢰즈의 <천의 고원>을 꺼내 나도
읽고 싶었지만
그냥 있었다
모두들 나를 두고 그냥 내렸다
청년도 나를 잊고 그냥 내렸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설마, 하던 청춘이 일어나서 나를 열고 그냥 나갔다
고대 앞에서 들뢰즈를 들고 내릴 때
사람들이 하얀색으로 흔들리는 내 등을 보고 있었다
* 『시향』2015-봄호 <지난 계절의 詩 다시 보기>에서
* 최문자 : 1982년 등단 / 게재지 : 시인수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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