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원에서
신원철
300년 전 내 조상 집성촌을 이루고 살았던 동송리
철의 삼각지대
지금은 백골부대,
몇 년 전부터 족보의 산소를 찾아 샅샅이 뒤졌다
이 동네서 가장 오래 살았다는 조 씨 노인
허허 웃으며
“여긴 작전지역이요, 군인들 맘대로라오”
“묘를 파내서 포대도 설치하고 변소도 만들었지요”
하기야 시체가 썩으나 똥오줌이 썩으나 토양에 이롭
기는 마찬가지지
죽어서 기름진 땅을 만들고
살아생전 역시 똥오줌 많이 쏟아내셨으니
이 벌판이야말로 조상님 묘역인 셈이다
흙으로 돌아가기 전
비석이라도 세우고 싶으신 아버지
“나는 다시 못 오니 이제부터 네가 해야 한다”
들판에 쟁쟁 울리는 메아리
부대 뒷산에서 유골이 하얗게 웃고 있다
오늘 아침,
철원미로 지은 밥이었다
*시집『노천 탁자의 기억』에서/ 2010.9.10 서정시학 펴냄
*신원철/ 경북 상주 출생, 2003년『미네르바』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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