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철원에서/ 신원철

검지 정숙자 2010. 12. 3. 01:52

 

   철원에서


     신원철



  300년 전 내 조상 집성촌을 이루고 살았던 동송리

  철의 삼각지대

  지금은 백골부대,

  몇 년 전부터 족보의 산소를 찾아 샅샅이 뒤졌다


  이 동네서 가장 오래 살았다는 조 씨 노인

  허허 웃으며

  “여긴 작전지역이요, 군인들 맘대로라오”

  “묘를 파내서 포대도 설치하고 변소도 만들었지요”

  하기야 시체가 썩으나 똥오줌이 썩으나 토양에 이롭

기는 마찬가지지

  죽어서 기름진 땅을 만들고

  살아생전 역시 똥오줌 많이 쏟아내셨으니

  이 벌판이야말로 조상님 묘역인 셈이다

  흙으로 돌아가기 전

  비석이라도 세우고 싶으신 아버지

  “나는 다시 못 오니 이제부터 네가 해야 한다”

  들판에 쟁쟁 울리는 메아리

  부대 뒷산에서 유골이 하얗게 웃고 있다

  오늘 아침,

  철원미로 지은 밥이었다



  *시집『노천 탁자의 기억』에서/ 2010.9.10 서정시학 펴냄

  *신원철/ 경북 상주 출생, 2003년『미네르바』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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