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9년 발간 『맥』 제6집을 접하고
정태범
우리 말로 된 시 전문지 『맥貘』은 일제 강점기인 1938년 6월에 창간되었다. 일제의 탄압과 감시를 견디지 못하고 4집을 마지막으로 스스로 정간한 것으로 알려져 왔다.
1995년 『맥』을 중창간하신 김상옥 선생도 4집을 끝으로 자진 정간했다고 하셨다. 그런데 한편 '5집'이 마지막이다, 6집이 마지막이다' 하는 소문이 퍼져가고 있었다. 허윤정 시인은 소문의 중심에 서 있는 지인을 만나 『맥』지 발간의 내력을 이야기하게 되었다.
그분은 『맥』이 4집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더 있는 것으로 안다고 귀띔해 주었다.
그분으로 인하여 소장자를 알게 되었고 어느 날 소개로 그 서지가를 만나게 되었다.
그 서지가는 윤길수 선생이다. 그는 『맥』 제6집을 소장하고 있다고 하였다. 그분은 『맥』6집을 20년 전에 구입하여 소장하고 있다고 하였다. 『맥』지를 발간하고 있는 허윤정 시인에겐 낭보가 아닐 수 없었다. 허윤정 시인은 즉석에서 『맥』6집의 소개는 물론 한 편의 글을 써달라고 청탁하였다. 그 후에 필자도 그분을 만나게 되었다.
"『맥』6집을 소장하고 계신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예, 소장한 지 오래되었습니다. 20년 전에 구입하였습니다."
"귀한 책, 감격하고 있습니다."
지난 주 음식점에서 윤 선생을 만난 자리에서 조심스럽게 싼 『맥』6집을 보게 되었다. 책을 이렇게 귀하게 본 것은 처음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였다.
그 책을 보는 순간 초정 김상옥 선생이 떠올랐고 그 어려운 일제 치하에 『맥』지를 발간한 그 불굴의 정신을 상기하게 되었다. 그분은 그간 모은 책 14,636권을 담아 2011년 『윤길수책』국근현대도서목록 1895-2010을 펴냈다. 여기에 소개하는 『맥』6집(118쪽)도 그 목록에 들어 있었다. 아울러 그 목록집에는 2011년 근대문학 유물로는 처음 문화재로 지정된 김소월 시집 『진잘래꽃』(매문사, 1925)도 들어 있었다. 『윤길수책』에서 서지의 『맥』 6집을 보고 실제『맥』6집을 보니 감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맥』6집은 1939년 11월 11일 발행했으며, 편집 겸 발행인은 김정기(金正琦)였으며 맥사(貘社, 서울시 익선동 33-17)에서 발행했다. 정가는 30전이다. 이 잡지는 동인지의 성격도 아니고 유파를 내세워 제한하지도 않았다. 참여한 시인은 김북원(金北原), 이석(李石), 차은철(車銀喆), 홍성호(洪星湖), 김정기(金正琦), 김동규(金東奎), 함영규(咸永奎), 조인규(趙仁奎), 김진세(金軫世), 신동철(申東哲), 황민(黃民), 김광섭(金光燮) 등 12명이다. 특히『맥』은 1집에서 4집까지에는(5집은 발견되지 않음) 창간사나 흔한 편집후기조차 없어서 그동안의 성격을 알 수 없었다. 그런데 6집에는 동인들의 편집후기가 실려 있어서 이 잡지의 성격을 가늠해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되었다.
편집후기를 통하여 『맥』지의 집필 경향을 정리해 본다면 첫째는 새로운 형식의 시를 쓰고자 했다는 점, 둘째는 표현 방법에서 기술을 중시했다는 점, 셋째는 상업화된 기성 중앙 문단과 거리를 두면서 순수성을 가지고 창작에 임했다는 점 등이다. 그러나 일제 때가 되어 기술적 측면에 치중하여 진술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김상옥 선생은 일제에 의하여 종간되었던 맥을 잇기 위하여 1995년 중창간하기에 이른다. 초정 선생은 1930년대『맥』동인의 유일한 생존자로서 1995년 가을 경주에서 조동화, 이종문, 노중석과 더불어『맥』의 문학정신을 잇기 위하여 중창간하기로 한다. 그때 원로 중견 문인으로서 피천득, 이원섭, 임강빈, 허영자, 오세영, 오규원, 신현득, 송하선, 허윤정 등 여러분이 참여하였다. 그렇게 하여 이분들로부터 원고를 받아 그 해 세모에서『맥』제1호가 발간된다.
『맥』1호는 초정 선생이 혼자 원고 청탁 편집 교정에 이르기까지 다하셨다. 『맥』에 대한 애착과 집념이 낳은 결과였다. 초정 선생은 『맥』2집까지를 끝내고 병환이 나셔서 제3집은 허윤정 선생이 참여하여 도와드림으로써 출간하게 되었다. 초정 선생은 곧 타계하셨다.
그 후 4집부터는 허윤정 선생이 맡아 계속『맥』을 출간하여 10집에 이르렀고 이제 『맥』제11집을 준비하는 중에 있다. 일제 때 발간된『맥』6집이 발견됨으로써 『맥』의 정신을 새롭게 조명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현재『맥』제11집의 발간에서 편집 방향을 조정하는 데 계기가 되었다. <-윤길수, 시동인지 『맥』에 대한 소고, 『맥』제11권,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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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상집 『내일은 아직 많이 남아 있다』에서/ 2015.2.16. <홍영사> 펴냄
* 정태범(1936-2015)/ 경남 산청군 삼장면 덕교리 서당골에서 태어남.
호는 지경(之卿), 법명은 무행(無行).
진주고등학교 졸업, 서울대학교 사범대학과 동대학원 졸업.
미국 플로리다 주립대학교에서 교육정책을 전공하고 철학박사 학위를 받음.
교육부 편수국장 역임, 한국교원대학 제1호 교수로 취임.
한국교원대학교 교수부장과 대학원원장 역임.
저서- 교육정책, 교육행정, 교원교육, 장학론 등의 교육관련 전문서 12권을 비롯하여
『북은 힘으로 치지 않는다』등의 수필집을 펴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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