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시집· 액체계단 살아남은 니체들

현재의 행방/ 정숙자

검지 정숙자 2015. 3. 5. 20:38

 

 

    현재의 행방

                                                     

     정숙자                                                              

 

 

  현재는 측근이며 최측근이다

  옆 뒤쪽에 위아래에 멀리 또는 가까이 들어차 있다

 

  그런데 잡히지 않는다

  닿지 않는다

  왜일까?

  빈틈없이 다가오지만 즉시 떠나는 그들

  무엇 때문에 어디로 뿔뿔이 흩어지는 것일까?

 

  솔직히 부는 게 바람―, 정확히 흐르는 게 강물이라면

  수심水深 깊은 언덕에 거울을 세워놔야지

  그리고 몇 광년쯤 돌아보리라          

 

               *

 

  그랬구나. 그랬었구나. 한 점 핏방울이던 때부터 내 심

장과 내 눈과 나를 둘러싼 현상들을 찍고 간 현재들

들이 셀 수 없는 차원으로 날아갔구나. 우주 구석구석

어디서든 나를 돕고 있(었)구나. 깊고 맑은 아침저녁은 그

들이 보낸 것이었구나. 그리고 어떤 현재는 다시 돌아와

오늘의 내 심장과 내 눈과 나를 둘러싼 현상들을 확인하고

또 떠나고 떠나 끊임없이 돕고 있구나.

 

                     *

 

  거울이여 ‘현재’는

  측근도 최측근도 아닌 나 자신이군요

  수많은 신체와 정신이었군요

  방금 스친 현재도

  끝 모를 공간으로까지 흩어지겠군요 

 

  거울이여 저의 현재는 가엾습니다

  어느 때 한 번 꽃을 안겨주지 못했습니다

  절뚝거리며 날아간 그들에게

 

  이제, 고맙다는 인사를 띄워야겠습니다

  제가 돕지 못한 그들이 저를 위해 떠돌다니요!

    -『이상』2015-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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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집『액체계단 살아남은 니체들』에서/ 2017.6.26. <(주)함께하는출판그룹파란> 펴냄

  * 정숙자/ 1952년 전북 김제 출생, 1988년『문학정신』으로 등단, 시집『뿌리 깊은 달』『열매보다 강한 잎』등, 산문집『행복음자리표』『밝은음자리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