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의 행방
정숙자
현재는 측근이며 최측근이다
옆 뒤쪽에 위아래에 멀리 또는 가까이 들어차 있다
그런데 잡히지 않는다
닿지 않는다
왜일까?
빈틈없이 다가오지만 즉시 떠나는 그들
무엇 때문에 어디로 뿔뿔이 흩어지는 것일까?
솔직히 부는 게 바람―, 정확히 흐르는 게 강물이라면
수심水深 깊은 언덕에 거울을 세워놔야지
그리고 몇 광년쯤 돌아보리라
*
그랬구나. 그랬었구나. 한 점 핏방울이던 때부터 내 심
장과 내 눈과 나를 둘러싼 현상들을 찍고 간 현재들… 그
들이… 셀 수 없는 차원으로 날아갔구나. 우주 구석구석
어디서든 나를 돕고 있(었)구나. 깊고 맑은 아침저녁은 그
들이 보낸 것이었구나. 그리고 어떤 현재는 다시 돌아와
오늘의 내 심장과 내 눈과 나를 둘러싼 현상들을 확인하고
또 떠나고… 떠나… 끊임없이 돕고 있구나.
*
거울이여 ‘현재’는
측근도 최측근도 아닌 나 자신이군요
수많은 신체와 정신이었군요
방금 스친 현재도
끝 모를 공간으로까지 흩어지겠군요
거울이여 저의 현재는 가엾습니다
어느 때 한 번 꽃을 안겨주지 못했습니다
절뚝거리며 날아간 그들에게
이제, 고맙다는 인사를 띄워야겠습니다
제가 돕지 못한 그들이 저를 위해 떠돌다니요!
-『이상』2015-봄호
-------------
* 시집『액체계단 살아남은 니체들』에서/ 2017.6.26. <(주)함께하는출판그룹파란> 펴냄
* 정숙자/ 1952년 전북 김제 출생, 1988년『문학정신』으로 등단, 시집『뿌리 깊은 달』『열매보다 강한 잎』등, 산문집『행복음자리표』『밝은음자리표』
'제9시집· 액체계단 살아남은 니체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무중력상태로의 진입을 위한 밤들/ 정숙자 (0) | 2015.09.04 |
---|---|
결여의 탄력/ 정숙자 (0) | 2015.09.04 |
모레의 큐브/ 정숙자 (0) | 2014.12.13 |
김윤정_'나'를 이루는 것들, 타자와 자아 사이의 상상력 (0) | 2014.10.14 |
파생/ 정숙자 (0) | 2014.08.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