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고통이 비싼 이유/ 정채원

검지 정숙자 2014. 11. 25. 23:25

 

 

     고통이 비싼 이유

     - 소더비 경매장에서 400억 원을 호가했다는 뭉크의 '흡혈귀',

        원제는 '사랑과 고통이었다 

 

      정채원

 

 

  불타는 듯 피 흘리는 듯

  여자의 묽고 긴 머리칼은 두 사람의 상반신을 덮고 있다

  남자는 여자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여자는 남자의 목덜미에 입술을 대고 있다

 

  칼날 같은 달이

  눈 감은 얼굴 위로

  떠오르는 밤

 

  오르골의 인형은

  밤새 유리 발목으로 서 있다

  태엽을 심장 쪽으로 힘껏 감으면

  잔잔한 고통이 흘러나오고

 

  토슈즈 안에 갇힌 채

  뒤틀리고 짓무른 발가락으로

  연습생 발레리나처럼 또 하루 빙글빙글

  세상 근처를 배회할 수 있다는 듯

 

  단단히 밀착된 채 아득히 먼

  두 몸은 흡혈 중이다

 

  더 이상 울지 않는

  망가진 오르골이 될 때까지

  서로의 태엽을 감아주는 밤

 

 

  * 『미네르바』2014-겨울호/ 신작시

  *  정채원/ 1996년 『문학사상』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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