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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王京(왕경)』손정미/ 발췌

검지 정숙자 2014. 11. 5. 19:41

 

 

       역사소설『王京(왕경)/ 발췌

 

        손정미(소설가)

      

                                                                                                                            참고1. 왕경(王京-경주)

                                                                                                                      참고2. 계림(신라의 옛이름)

 

 

  * 백제는 고구려에서 갈래가 나온 나라였다. 고구려를 세운 추모대왕의 왕비인 소서노 여왕이 두 아들 온조와 비류를 데리고 내려와 백제를 세우는 대업을 이뤘다. p-76.

 

  * 계림의 풍월주란 고구려의 선배와 다를 바 없었다. 삼국 중 가장 후진 소국이던 계림이 고구려의 선배를 보고 만든 게 틀림없다. 맏형을 보고 배우듯 계림은 고구려의 선배제도를 보고 저들에 맞게 고쳐놓은 것이다. p-108.

 

  * "(…)나라에 충신, 용장이 나와도 군주가 알아주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

  (…)

   "현명하고 용맹한 군주라도 제대로 보필하는 신하가 없으면 운이 따라주지 않는 거란다. 너는 이 나라의 자랑스러운 풍월주로서 큰 뜻을 품어라. 기화도 함께 따라올 것이야."

  (…)

  "지금의 이 큰 그림은 선덕대왕 때부터 그린 것이긴 합니다. 사실 선덕(善德)대왕 시절은 위기였어요. 귀족 놈들이 여제(女帝-여왕)는 안 된다고 얼마나 난리를 쳤습니까. 고구려 백제 놈들은 약 올리듯 시도 때도 없이 쳐들어오지. 아시겠지만 당과 고구려에 대왕(김춘추)을 보낸 분도 선덕대왕이시잖아요. 그뿐입니까? 장안에 유학생을 보내 당의 문물을 보라 한 분도 선덕대왕이죠." 

  "그렇지!"

  "몇 놈이 선덕대왕을 여자라고 업신여겼지만 그만한 칼자루를 갖고 통치한 왕도 없었었어요."

  (…) 여느 남자보다 장신이던 선덕대왕은 커다란 손으로 영명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곤 했다. 선덕대왕의 손이 어찌나 큰지 그 기운은 다정하고 따스했지만 머리카락이 뽑힐 만큼 손힘이 강했다. 영명이 앉은 선덕대왕의 무릎은 마치 바위라도 되는 것 같았다. p-121.

 

  "계림을 위해 범을 키우고 있는 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 강아지 새끼를 키우고 있었구나. 네가 부모를 택해 태어날 수 없듯이, 계림에 난 것도 네 선택은 아니었다. 왕경의 진골로 태어난 것, 화랑이 됐다는 것이 기쁨인 줄 알았느냐? 천만에 슬픔이다. 네 몸과 혼은 네 것이 아니라 계림을 위해, 이 위대한 신국(神國)을 위해 바쳐야 하기 때문이야. 

  그걸 모른다면 내 집은 너 같은 놈을 재워줄 곳이 아니다." 

  어려서부터 계림을 위해 큰일을 할 사람이란 말을 듣고 자란 김유는 아찔했다. 천 길 낭떠러지 위에 외발로 선 듯했다.

  "용서하십시오."

  김유는 바닥에 머리를 찧으며 눈물을 흘렸다.

  이후 월희를 찾지 않았다.

  친구들은 김유가 영명부인에게 크게 혼난 게 틀림없다고 수군댔다. 귀공자들은 김유의 처지를 비웃으면서 귀공녀를 데리고 나가 못다 푼 정을 나눴다.

  고구려-백제군이 언제 쳐들어올지 모랐고 그땐 언제든지 말을 몰아 전장에 나가야 했다. 백제 의자왕이 왕위에 오른 뒤로는 계림을 위협하는 일이 많아졌고 전투가 벌어지면 귀동자들이 앞장서야 했다. 아버지를 잃고 형을 잃은 자가 한둘이 아니었고 언제 자신의 차례가 될지 몰랐다.

  전쟁에서 공을 세우면 포로를 노비로 받고 녹읍을 하사받지만 패장(敗將)이 되면 씻을 수 없는 치욕이었다. 비겁하게 굴복해 살아온다 해도 왕경의 싸늘한 시선을 견딜 수 없었다. 부모는 그런 자식을 보지 않았고 철저하게 따돌림을 당했다. 시종들마저 우습게 보며 손가락질을 해댔다.

  전장에 나가선 죽기 살기로 싸워 이겨야 했다.

  내일을 알 수 없는 귀공자들에겐 오늘 하루 이 밤이 소중했다. p-143.

 

  * 대왕(김춘추)은 사랑하던 딸 고타소의 시신을 거두지도 못해 크게 낙담했다. 딸의 소식을 듣고는 하루 종일 눈앞에 사람이 지나가도 알아보지 못할 만큼 충격이 컸다. 딸에 대한 복수심으로 불타올랐다.

  대왕은 딸과 사위를 잃자 목숨을 걸고 고구려로 올라가 연개소문과 담판을 벌였다. 당시 막리지는 고구려 영류왕(榮留王)을 시해하고 권좌에 오른 연개소문으로, 고구려 정국은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살벌한 시점이었다. p-147.

 

  * (…) 눈이 밝아야 손이 빠른 법이다. 눈과 검은 동시에 시작하는 것이니까. 눈이 보는 동시에 내가 쥐고 있는 검이 향하고자 하는 곳에 도달해야 한다. 눈과 검의 연결이 끊어지면 적은 그 틈을 타 노리고 너를 찌를 것이다."

  (…) 검은 대범하면서도 정교해야 한다. 눈을 감고서도,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도 고양이의 눈을 벨 수 있을 정도로 정교해야 해. 광채를 내는 고양이의 밝은 눈이 아니라 고양이의 감은 눈 말이다."

  (…)

  "검을 연마하는 자는 손에 검을 숙련시키지만 마음은 물과 같아야 한다. 물처럼 고요해야 한다는 말이다. 손이 검에 완전히 익어야만 마음이 검을 쥔 손을 잊을 수 있다는 걸 명심해라.

  손이 검을 잊어야 정체되지 않을 수 있지. 마음이 고요해야 상황이나 적에 여유 있게 대처할 수 있고 중요한 건 무궁무진한 변화로써 대벅할 수 있다는 점이야." p-150, 151.   

 

  * 고구려와 백제의 침략이 그칠 날이 없고 가장 강력한 당의 황제와 왕경 귀족들이 여제(여자 군주)라는 이유로 반대해 어려웠지만 탁월한 예지력과 현명함으로 극복했다. 부왕인 진평대왕의 재위가 길어지면서 그만큼 오래 기다려야 했지만 자신의 시간을 준비해왔다.

  즉위한 후에는 명민한 김춘추와 신통(神通)이 있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무예에 뛰어난 김유신을 중임하면서 기반을 다져나갔다.

  김춘추는 왕위에 오른 지 4년 만에 폐위된 진지왕의 손자로서, 진지왕을 권좌에서 끌어내린 귀족들이 견제가 만만치 않았다. p-161.

 

  * " 심심할 때 보는 거야. 道雖不在書策 而學道者必始於書策(도수부재서책 이학도자필시어서책- 도는 서책에 있지 않으나 도를 배우는 것은 반드시 서책에서 시작된다)이라잖아." p-187.

 

  * 누구 하나 도와주는 사람이 없는 게 나의 운명일까. p-201.

 

  * " 대당은 엄청나게 상업(商業)을 장려하는 나라야. 태종(이세민) 시절부터 서역과 하루라도 빠르게 교역을 하기 위해 참천가한도(參天可汗道)라는 속도(速道)까지 만들었어. 가한이란 말은 하늘의 아들을 칭하는 지배자인데, 천가한은 태종을 우러르며 붙인 이름이지. 역참을 세워 오고가는 자들에게 말과 술, 고기를 대주고 있는데 역참마다 수백 마리의 말과 노새가 준비돼 있지. 대당 전체로 보면 역참이 1600곳이 넘는다고 하니 따져보면 30리마다 역참을 하나씩 세운 거야. 대단한 놈들이지."

  (…) 

  당에 대해 약간 빈정거리듯 말하는 부사는 고대거(高臺車)라는 수레도 볼 수 있을 거라 말했다. 고대거는 바퀴를 크게 만들어 진흙에 빠지거나 사막을 이동할 때 모래에 묻히지 않게 만든 수레였다. 말 네 마리가 끄는 고대거 위에는 마(摩)로 만든 포나 장막을 둘러 낮에는 뜨거운 햇볕을 피하고 밤에는 수레 안에서 잘 수 있게 만들었다. p-230.

 

  * "칼만 휘두를 줄 알았는데 경도 읽을 줄 아네 흠. 非知之艱 行之惟艱(비지지한 행지유간-아는 것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그것을 행하는 것이 어렵다) 아닐까? 경을 읽는다는 사람의 행동이 어찌 그러오?" p-256.

 

  * 계림군은 죽음을 ,무릅쓴 계백의 결사대와 맞붙었지만 네 차례나 패했다. 김유신은 7월 10일 당군과 합류하기로 군약(軍約)을 맺었기 때문에 한시가 급했고, 계백의 결사대는 백제의 명운을 걸고 결사항전에 나섰다. 양측 모두 한 치도 물러설 수 없는 상황이었다.

  계림군은 나이 어린 반굴(盤屈)과 열여섯에 불과한 관창(官昌)을 계백의 진영으로 보냈다. 계림군은 기가 꺾였지만 이들이 적진에서 목 베임을 당하자 눈빛이 달라졌다. 말에 매달려 온 관창의 목을 보고 모두들 총공격에 나섰고 백제군은 계림군을 당하지 못하고 패하고 말았다. P-292.`

 

  * 역사가 없는 나라와 백성은 아무것도 아니다. 적군에게 짓밟히고 약탈당해도 역사가 남으면 영원히 살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하면 개돼지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구! 복신(福信) 공이 함락되지 않은 성을 지키고 백제를 지킬 것이다. 난 복신 공을 찾아갈 것이야." P-304.

 

  *** 작업의 괴로움과 환희는 거북의 등과 배처럼 한 몸인 채로 물살을 헤엄쳐 나왔다. <작가의 말> 중에서. p-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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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사소설『王京(왕경)』/ 2014.10.24 <(주)샘터사 펴냄

  *손정미/ 서울 출생, 연세대학교 영문과 졸업. 1990년 조선일보에 들어가 20년간 문화부, 사회부, 정치부, 산업부 기자로 활동했다. 신문사 사회부 경찰기자로 사건/사고 현장을 취재했으며 조선일보 첫 정치부 여기자로 여야 정당을 출입했다.

  대학시절부터 소설 집필에 대한 갈망이 있었다. 문학 담당 기자 시절 고(故) 박경리 선생으로부터 소설을 써보라는 권유를 받았다.

  2012년 소설을 쓰기 위해 조선일보를 그만두고, 삼국 시대를 배경으로 한 역사소설 『王京(왕경)』을 집필했다. 『王京(왕경)』을 쓰기 위해 신라의 수도였던 경주를 비롯해 고구려 영토였던 백두산과 중국의 집안 등을 다녀왔다. 이어 소설의 배경인 6~7세기 당나라 수도였던 장안(현재 시안)과 실크로드의 요충지였던 우루무치, 이란을 직접 답사했다.

  현재 월간 샘터 편집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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