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월
박서영
꽃잎들은 긴 바닥과 찰나의 허공이라는 계절을 지나는 중이
다. 내가 사랑한 것들은 왜 그리 짧게 살다 떠나는지, 변하고 돌
아서는지. 무덤 속에서 튀어 올라오는 사랑과 입맞춤 한다. 나는
북쪽에 산다. 피부는 들판의 풀들처럼 자라면서 늙어가고, 가끔
은 잠적한다. 그리곤 튀어 오른다. 무덤 위에 피는 꽃처럼 잠시
아름다워진다. 생일(生日)과 기일(忌日)이여, 점점 더 멀어져라.
나의 울음과 너의 울음이 다르다. 저녁과 아침 사이 밤이여, 점점
더 캄캄해져라. 나는 남쪽에 살고 북쪽에 산다. 바람이 분다. 꽃
피고 진다. 밤하늘이 바닥까지 내려와 있다. 바다에 흐르는 은하
수. 바닥의 애벌레 좌. 얼룩진 한쪽 벽 구석의 거미 좌. 이젠 천
천히 기어 너에게 간다. 길의 점막에 달라붙은 꽃잎들. 바닥을
물고 빠는 저 불쌍한 입술들. 벚꽃나무가 핀 너의 가슴은 백야의
시간을 지나는 중이다.
-『작가와 사회』2013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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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반된 숙명에 대한 중얼거림
- 박서영 시인의 「삼월」을 읽고
정푸른
삼월은 살아있는 것과 죽어가는 것들의 비무장지대다. 치열하지만 무덤덤한 풍경으로 사랑하고 이별하고, 죽어가고 다시 태어난다. 한 발자국이 벼랑인 겨울의 끝자락이며 봄의 입구다. 그 얇은 종잇장 같은 시간이 삼월이다. 일 년에 한 번은 삼월이 오고 삼월이 간다. 그때가 바로 우리 가슴에 나이테가 만들어지는 순간이 아닐까? 무량하게 흘러가던 시간이 그 언저리에서 멈칫 걸음을 멈추는 것이다. 그 순간 우리는 한 켜 딱딱해지고 한 켜 어두워진다. 겨울이라는 먹지를 깔고 호흡을 일으키고 연분홍 실핏줄을 살려내려는 세상 만물의 발버둥이 거기 있다. 그것은 삶으로도 통하고, 죽음으로도 통한다. 삶과 죽음은 서로 끌어당기는 힘을 가지고 있다. 삼월은 지고한 끌어당김의 끈이 풀릴 듯 말 듯 아슬아슬하다. 그 안에 시의 화자가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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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엠포엠』2014-봄호/<『포엠포엠』에서 본 詩 >中
* 정푸른/ 2008년 『미네르바』로 등단, 노이즈 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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