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피, 피아노/ 정채원

검지 정숙자 2014. 9. 15. 20:57

 

 

 피, 피아노

 

정채원

 

 

                   몸속에서 바늘 4개가 발견된, 생후 50일된 아이가 병원에서 치료받고 있다.

                                                              바늘 한 개를 꺼내고 두 번째 수술을 앞두고 있다.

                                                                   ̄중국 징화스바오[京華時報]2013-08-23

 

 

  건반을 눌렀는데 악보도 펼치지 않고 무심히 눌렀는데 어느 틈에 수백의 해

머가 현을 때리고

 

  몸속의 해머들이 핏줄을 때리듯 절벽으로 핏줄이 이어진 듯 나를 미는 듯

 

  몸속에는 몇 개의 바늘이 있는가

 

  어디서 언제 생겨난 건지 모를 바늘들이

  늑골 사이를 지나간다

  몇 달씩 해가 뜨지 않는

  캄캄한 동굴 속에서

  피가 출렁인다, 현이 진동한다

 

  부드럽게, 세게

  천 번을 두들겨도

  변함없는 소리의 높낮이를 지키는

  당신의 가슴엔 눈이 없다

  오랜 시간 동안 천천히 건조시킨 가문비나무처럼

  단단하고 잘 휘지 않는 당신은 나와 무관하고

 

  바늘을 핏속에 녹이는 밤, 바늘을 피로 만드는 밤

  어떤 해머도 핏줄을 때리지 못하는

  침묵 속, 한 덩이 어둠이 되어버린 짐승의

  차가운 심장을 나는 천천히 어루만진다

 

 

  * 『詩로 여는 세상』2014-가을호 <이계절의 신작시>에서

  *  정채원/ 1996년《문학사상》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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